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20:08

고이즈미 정권 이후, 일본사회의 보수 우경화 현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특히,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보수 우파적 성격을 띈 정치세력이 주도하고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회 지도층과 언론들이 합심해서 만들어 내는 뛰어난 아젠더 세팅력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채 여과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순진한 국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좋은 예 하나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일본헌법 제
9조에 대한 개정 논의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대 여론이 상당히 우세해 보이던 5·6년 전에 비해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의 찬반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일본 언론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한 분인 이토 나리히코
(伊藤成彦) 선생은 필자가 번역 출판한 자신의 저서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행복한 책읽기, 2006년)」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일본 헌법 제9조가 일본 패전 60년이 되는 오늘까지 문자 하나, 단어 하나마저도 바뀌지 않고 지켜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아시아 제민족으로부터의 강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 헌법 제9조의 존폐를 둘러싼 투쟁은 일본 내의 패권세력과 평화 세력간의 투쟁임과 동시에 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아시아 민중들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단지 일본 헌법 속의 한 조항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질렀던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반성임과 동시에, 더 나아가 다시는 그러한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아시아 각국 민중들을 향한 굳건한 약속 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 보수 우익 패권세력들이 획책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 국가화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반대는 저들이 주장하듯 '내정 간섭'이 아니라 우리의 분명한 '권리'인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만 일본에서 유학생활 중이던 어느날, 일본인 지인과 함께 야스쿠니(靖国)신사 내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시설 유슈칸(遊就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전시실의 2층 입구에 있는 영화 상영관에서 상영중이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잊지말자'라는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고, 대동아 전쟁은 서구 세력으로부터 아시아 제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영화 상영관을 나와
30여분에 걸쳐 전시시설을 쭉 둘러본 후의 제 느낌은 야스쿠니신사 내 그곳, 유슈칸은 단순한 부속시설(전쟁박물관)이 아니라 ‘전쟁 미화 박물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합사되어 있는 A급 전범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고 해도 이와 같은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A급 전범들이 그곳에 있건 없건 지금의 야스쿠니는 과거회귀 세력들의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겠지요.


갈등의 시대, 한·일 양국의 양심적이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굳건한 연대와 동맹만이 21세기를 갈등과 분쟁이 없는 평화와 공생의 세기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교과서 문제, 정신대 문제, 영토문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현재진행형이지 않은 것이 없는 지금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이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