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10

한·일간 정상 셔틀외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더 없이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동북아의 위험 요소를 양국 정상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풀어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불안정 요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한·일 셔틀외교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대일 접근 방식에 의아함을 떨칠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1차 셔틀외교 때에 문제화 되었던 ‘임기동안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은 일면 옳기도 하면서 또한 잘못되기도 했다.

먼저 옳다고 보는 이유는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메시지를 양국의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잘못되었다고 보는 이유는 단어선택의 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과거사 문제를 공식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추궁'하지 않겠다로 갔어야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돌려 받아야 할 빚이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의 역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비인간적이었고 반인륜적이었던 이웃 사람으로서의 참회와 반성이다. 국가와 국가간, 정부와 정부간의 잘 잘못이 아닌 같은 인간대 인간이라는 관계로서의 정리 문제이다. 이게 제대로 풀려야만 다정한 이웃나라로 허물없이 맺어질 수가 있다.

생각해 보라. 언제 도끼 들고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웃과 담 하나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 북한과 중국을 적으로 간주한 신방위계획, 한반도의 유사시를 가정한 비밀 훈련이 잔존하는 한 이 가설은 유효하다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금도 일본의 보수 우익화에 경기(驚氣)하듯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호 신뢰와 믿음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우선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며, 바로 그 ‘무엇’에서 시작된 의문과 해답을 ‘어떻게’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다.

아쉽게도 근년 들어 일본사회는 급격히 보수우익화로 가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지적했던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줄 선생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해줄 전달 매체가 없다. 이미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애국언론으로 돌아선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그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국민들에게 그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상기는 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갖고 있는 냉전적 인식구조 해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자, 다시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지난간 과거사를 ‘추궁’하지 않는 선에서 ‘언급’은 해 주시라는 말이다.

“당시에 당신들은 이러 이러한 일들을 했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우리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동북아 중심국가를 생각하고 있다. 근데 거기에 일본도 좀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이러 이러한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거듭 거듭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몇 일 남겨 놓으면 언제든 어김없이 튀어 나오는 일본 우익세력들의 망발 버릇을 단순한 실언이나 이들의 무지 정도로 받아들여서는 정말 곤란하다. 그것은 이들의 치밀한 역할 분담이고, 수상으로 하여금 양보할 수 없는 선을 이미 그어주는 것이고, 일본 국민들에게 추후 생길지도 모르는 정상회담에서의 우리측 요구를 일방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선제 공격적 행위라는 점이다.

또한 어제 있었던 2차 셔틀외교에서도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특히 피해자의 유골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진 사실에 대해 일본 국민들의 분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다는데, 이것 역시 형평성에 어긋나는 말씀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이해를 표명하시기에 앞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작업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즉, “냉정하게 살펴봤을 때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 역시 지나간 불행한 역사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가 있다. 먼저 이러한 지나간 역사의 피해 당사국인 북한, 더 나아가서 주변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달고 나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에 이해를 표명하심이 순서였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어제 기자 회담에서 말씀하셨듯이 약소국이 관용을 베풀면 자칫 비굴로 보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상대방의 잘못을 정당화 시켜주는 오류를 범하고, 북치고 장구치는 일본 우익세력의 준동에 박수를 쳐 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한·일관계,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는 무턱대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의 접근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 해서 '지역생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새로운 한·일관계요,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 아닌가. 그렇다면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그곳에는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신뢰와 믿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

그래서 대일 외교는 양국민의 '인간적인 신뢰회복'을 기본으로 '지역생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한 냉전구조의 해체로 부터 풀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00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 마다, 그러니까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든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일본의 역사왜곡 사실과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한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역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꺼내서 두 정상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일본 언론이 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양국의 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뜻을 전달을 했고,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일본을 용서했으므로 중국 역시 미래를 생각해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후에 이런 발언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한일 및 중일 관계도 좋아지게 된다" 물론, 이 발언과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21일, 5년만에 일본을 방문한 부틴 러시아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 마주 앉았다. 그러나 일본측은 자국의 최대 희망사항 중에 하나인 북방영토(쿠릴열도) 4개 섬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정상회담을 마쳐야 했다.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부틴 대통령의 자세가 워낙에 강경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만 목 매달았다가는 중일 관계만큼이나 러일 관계 역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대폭 양보해서 성사된 부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었다.

이를 놓고, 일본 언론 및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있어서의 일본의 영향력 저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과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들 국가가 러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일본의 중요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한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 정부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아소 타로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전제 조건이라면 참배를 중지하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명언했다. 즉, 다음달의 셔틀 회담이 연기 또는 중지된다고 해서 양국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일본측에 진의를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일본 외상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외상의 개인적인 생각이라 하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항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이상의 결과들을 놓고 일본 외교력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도 만만치 않게 들리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고소하게도 들리는 이와 같은 분석들이 과연 일본 외교의 참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한일 및 중일 관계가 한미 · 중미 관계의 연장선상으로 옮겨간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한일 · 중일 관계 속에 당사자인 일본은 없고, 대리인인 미국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동북아 외교의 큰 틀을 대미 관계의 연속선상에 두고 미일 관계의 돈독함 속에서 풀려고 하는 의도로 즉, 대미 종속적 행태를 노골화 하고 있는 고이즈미 정권을 비롯한 신흥 우익세력의 성향으로 볼 때, 대미 의존도의 강화가 여러모로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 하다.

현재 고이즈미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우정산업 민영화, 주일 미군 재편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 등을 놓고 일본 정부에 가한 미국측의 압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 클라이맥스는 부시 정권으로부터 개혁의 진도가 너무 늦다라는 지적을 받고 급피치를 내고 있는 우정산업 민영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일 미군 재편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를 미일 군사 동맹의 강화로 보는 측도 있으나 사령부 기능의 본토 이전 등을 감안해 볼 때 쌍방의 생각이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으며,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주일 미군의 이전비용조차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음은 미일 군사 동맹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일례로 거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도를 타파할 수 없음이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은 미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하에서 성립된 체제이고, 그와 같은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전후 일본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데, 그 한가운데에 천황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고 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대미 관계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전쟁 전 체제인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였고, 이를 위해 천황 자신이 자국의 헌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미국측과 교섭을 벌인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결국은 동북아 외교 역시 이와 같은 모순에 함께 빠져들어가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일본 현 체제에 씻을 수 없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일본 신흥우익들은 동북아 문제를 동북아 당사자와 풀려는 생각을 버리고, 동북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을 매개로 할 것을 계산에 넣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외교와 과거사를 분리해서 대응해 나가며, 외교는 일본 정부가 맡되 과거사와 관련한 일체의 해결책은 미국에게 의존하고 미국의 입김이 주변국에 전해지도록 경제력을 동원한 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이는 대미 의존에 '올인'함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의 원죄를 용서해 준 유일한 국가에게 자신의 안위를 위탁하고 구원 받는 쪽이 이해 당사자들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것 보다 빠르고 편할 것으로 판단했지 싶다.

비록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본 신흥 우익세력들은 이와 같은 전략을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우선, 주변국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행위와 망언 등으로 지역 갈등을 부추키고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몰고 가서 이를 자국 내 우경화 확산에 한껏 이용할 수가 있으며, 이는 일본 내 '전후사의 완벽한 청산'과 함께 '평화국가'에서 전쟁이 가능한 '전전(戰前)체제'로의 방향 전환을 이루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뒷 수습은 미국이 맡고 말이다.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비록 뒷 정리일 망정 도둑질(?)도 같이하면 동지애가 생긴다고, 이에 더해 대미관계는 한층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일본의 외교력은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단지 미국의 '팔뚝' 에 기대어 꼬랑지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41

한국에서는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인해 군사독재 정권의 주먹구구식 대응과 피해자 보상 문제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9일 일본 히로시마 고등법원에서는 일제시대 미쯔비시 중공업 징용 노동자 40명이 제기한 강제 징용 원폭피해자 배상 소송에 원고 일부 승리 판결이 나왔다.

원고들이 제기했던 '지급하지 않은 임금과 원폭 피해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요구에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원고측 일부 주장에 한해서만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에 히로시마 고등법원이 내놓은 판결문에 의하면 ‘국외로 출국함으로 해서 원폭2법 등 관련법에 따른 수당 수급권을 박탈한 옛 후생성 국장 통달(업무지침) 402호는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법률상 근거가 있는지 여부 등을 충분히 조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며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실을 놓고 한국에서는 태평양 전쟁 한국인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처음으로 승소를 했다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맞는 말이다. 지금껏 일본 고등법원은 태평양 전쟁 당시의 강제연행, 강제노동, 해외거주 피폭자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번도 국가에 배상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단지 강제노동을 강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배상명령을 딱 한번 내린 적이 있는데. 작년 7월에 니시마쯔(西松) 건설회사를 상대로 중국인 원고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측 승소 판결을 내렸던 것이 그것이다. 이번과 같은 히로시마 고등법원의 판결로 기업의 안전배려 의무 위반에 대한 위법성 지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듯 전례 없는 판결이 앞으로의 다른 피해자들의 항소심에도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라며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다. 이미 작년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패소한 경험이 있고, 강제징역 노동자 피해 소송에서 줄줄이 패한 기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항소심에 어떤 영양을 미칠지 주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번 판결내용이 썩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강제연행 등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 없음으로, 미쯔비시 중공업에 대해서는 배상시효가 만료됐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이 과거사 관련 피해배상 소송의 벽으로 만들어 놓은 과거의 사건이라는 '시간'의 문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 판결의 핵심은 우리가 원했던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본 행정관청의 업무지침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다분히 국내적인 성격이 강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앞서 판결문에서도 살펴봤듯이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옛 후생성 국장의 업무지침이 ‘국적에 관계없이 피폭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인도적인 법 정신·법 적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법 하다고 판결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사와 관련된 일본 행정 관청의 판단에는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1945년 8월 15일, 이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전후(戰後)와 전전(戰前)으로 나누어 과거사를 판단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전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간혹 이번과 같이 긍정적인 판결을 내놓기도 하는데, 주가 되는 것이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의 공권력 및 안전의무 태만에 대한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전쟁 종결 후 자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 했는지의 여부 등이 그것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번 판결 역시 1974년 즉, 전후 일본관청의 업무지침과 관련된 시시비비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전 또는 전쟁 중에 있었던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강제연행, 강제노동, 위안부 문제, 전쟁 책임자 처벌 문제 등 단 한건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번 판결이 주는 교훈, 앞으로의 항소심과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이 과거사와 관련한 우리의 딜레마이다. 이렇듯 이들의 과거사 분리대응 사실을 알면서도 승소를 위한 전략만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단순하게 승소와 배상만이 우리의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면 전후의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대응하면 되겠지만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 또 그에 따른 적절한 사죄와 보상을 바라는 우리로서는 결코 전전 상황을 따지고 들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재협상 및 추가 배상 문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거기에 더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정부 역시도 맞대응책으로 추가 문서공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 참여정부 입장에서는 전혀 부담될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내의 과거 청산 요구에 기름을 부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추후 상정해 볼 수 있는 한일협정과 관련된 피해배상 문제의 방법론 역시 앞서 거론했던 관점에서 파악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포괄적인 과거사 피해배상 형식으로 접근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지며, 오히려 이들의 무관심과 시간 벌기 전략에 따른 국내 내부 분란 등으로 우리가 피해를 볼 우려가 크다.


차라리 일본의 분리대응 전략에 맞춰 일본정부를 설득하고 추가협상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지혜를 빌려보면 어떨까 싶다. 즉, 포괄적 의미로서의 과거사 관련 협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1965년 한일협정에 초점을 맞춰서 당시의 분위기와 부당성, 제 3국의 간섭에 의한 영향 등을 조목조목 주장하고 주변국과 외교적 협조를 통한 전략적인 대응을 해 나간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비록 법적책임이 소멸되었다고는 해도 도의적 책임까지 소멸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과거사를 매개로 한 국가의 도의적 책임이라는 복병 아닌 복병의 출현이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일관계,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39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일본내 건전한 시민계층 역시도 '역사왜곡과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라며 적극 반대해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만드는 모임)>의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도쿄 도교육위원회가 내년에 개교하는 도쿄의 한 도립 중고등학교에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좋다.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가 어떠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그래도 도쿄 도교육위원회는 지나쳤다. 소설책을 역사교과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면 하다못해 선택과정만이라도 투명하게 공개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도쿄 도교육위는 국내외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중대사안을 결정하면서 논의 시간은 채 5분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도교육위원 6명이 모여 앉아 8지선택형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 넣기로 끝내도 좋을 사안인가?

적어도 8개 역사교과서 중에서 1개를 선정하기로 결정을 했다면, 왜 이 교과서를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교과서 채택 권한을 갖고 있는 도쿄 도교육위원 6명 중에 4명이 이시하라 신따로 도쿄 도지사가 기용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일부 일본 언론에서도 상당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아닌가? 어제 아사히신문은 사설 제목을 '도쿄의 교육이 걱정된다'라고 뽑고 있다는 사실을 이시하라 지사는 다시금 되새겨 보시기를 바란다.

몇일 전인가 한국에서도 '한일합방은 합헌이다'라고 주장했던 정신나간 소설가가 있었다고 들었다. 망발도 이런 망발은 없다. 이 양반은 꼭 같은 소설가 출신인 이시하라 신따로 도쿄 도지사와 한번 만나기를 권해 드린다.

그리고 둘이 마주앉아 '한일 역사왜곡 망언자들의 모임'이라도 하나 만드시기를 바란다. 그래야 전선이 분명해지지 않겠는가.

더 이상 천황폐하께 충성을 맹세한 대일본제국 사관학교 출신 · 쿠데타로 민족정신을 말살한 영원한 민족 영도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대한민국이라는 안전망 뒤에서 암약하며 국민정신에 해악을 가하는 비겁한 짓을 그만두고 양심과 진실에 입각한 싸움을 하시기를 바란다. 당신의 동지들이 바다건너 일본 땅에서 두 손 벌려 환영해 줄 것이다.

또한 어디 그뿐인가. 도립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할 때는 해당학교 교사들의 의견을 듣는 '학교표'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제도를 2001년도에 도쿄 도교육위가 폐지해 버렸다.

또한 도교육위가 선택한 교과서에 자문을 해주는 도교과용 도서선정 심의회의 위원 20명은 도교육위가 임명한다. 결국 도교육위의 선택과 권한을 감시 · 제어할 기구는 어디에도 없다.

누가보더라도 이는 비민주적이고, 일방통행의 위험이 있는 파쇼적 발상이다. 차제에 교과서 선정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제고해 보시기를 바란다.

지난 96년, 자학의 역사에서 탈피하고 불건전한 자국 역사교과서를 새롭게 쓰겠다며 시작된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는 2001년부터 처음 채택되었다. 이때 이 역사교과서는 난징학살과 조선인 위안부 강제연행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래도 이때는 어정쩡하게 나마 이런 사실들을 인정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년도에 나올 새 개정판 교과서에서는 이 부분을 아예 삭제해 버린 것으로 만드는 모임 회보 7월호가 밝히고 있다.

자학의 역사에서 탈피를 하건, 불건전한 자국 역사 교과서를 새로이 쓰건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왜곡하는 일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2001년 이 교과서의 채택율은 채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일본사회에서 그 존재 자체도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우경화 바람이 만만치 않다는 점과 도쿄 도교육위에서도 보여지듯이 도교육위원 선정에 일부 극우세력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게 참으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내년은 일본 전국의 각급 학교가 교과서를 4년에 1번씩 새롭게 선택하는 해이다. 그래서 현재 후소샤판 역사교과서 채택에 반대하고 있는 도쿄 네트워크 등 일본 시민단체들이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채택율 상승에 따른 우려도 있지만 만약 내년에도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의 채택율이 저조하게 된다면 역사를 바꿔 쓰고자 했던 만드는 모임측의 활동이 크게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시민단체와 일본 시민단체들의 연대와 교류가 절실히 요청된다.

한국 정부 역시도 문제가 불거져야 항의 논평 한 줄 발표하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서 5년 뒤, 10년 뒤를 보고 시민단체 활동에 인적 ·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마시기 바란다.

정부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시민 레벨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을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들과 우리가 서로 엮여서 동북아 생활공동체 건설에 힘있게 나아갈 수 있는 추동력을 만드는 것, 그것이 새로운 한일관계 · 파트너쉽으로서의 한일관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37

일본 언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작년 11월 라오스에서 열렸던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이 끝난 뒤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마치무라 일본외상을 불러 세워 놓고 ‘내년이 어떤 해인지 알고 계시지요?’라고 말을 걸어 일본 정치가의 실언 등을 경고했다고 한다.

자칫 역사 문제로 심각해질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 환기였지만, 독도 문제라고 하는 일본측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계기가 되어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라고 일본 언론은 전하고 있다.

우리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된 대로 어제 오전에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안을 성립시켰다. 그래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거센 항의 활동도 결국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본 주요 언론, 텔레비전과 신문들도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 주요뉴스에 이 사실을 크게 보도를 하고 있다. 주로 사실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보도를 하고 있는데, 시마네현 의회에서의 조례안 통과 소식, 그리고 한국의 반응을 곁들여서 한류붐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는 논지이다. 그러나 결론은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는 것이고, 일본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기대한다는 게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운 것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내 놓은 논리의 빈약함이다. 1905년에 시마네현에 귀속되었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라는 말뿐이다. 그런데 이 1905년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식민지 지배와 직결된 고종황제를 협박해서 성사시킨 을사조약과 관련이 있는 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사실은 쏙 빼 놓고 보도를 하고 있다. 바로 이점을 적극 부각시키는 것이 앞으로 우리 정부의 과제라고 보여진다.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 조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정부는 당초 한국쪽의 반발을 ‘독도문제는 양국 서로의 주장이 뚜렷하기 때문에 일과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경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 독도문제와 더불어 역사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사태 해결의 방책을 모색은 하지만 당장은 특별한 대책 없이 열이 식기만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은 작년 가을부터 시마네현 의회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역사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단해서 사실상 묵인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방의회의 움직임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문제가 커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독도 문제 역시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1905년 이라는 식민지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 외무성 역시 별다른 역할을 못했고, 한국정부의 거센 항의가 있자 일본외무성 내에서는 ‘빨리 조례 제정 움직임에 제동을 걸 궁리를 했어야 했다’라는 반성론도 일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올 해는 한·일 우정의 해 아닌가?

그래서 시마네현의 조례 성립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외무성 간부는 ‘국교 정상화 40주년보다 100주년에 눈길이 가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은 역사 문제를 반성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항의 목소리가 높아져서 국교정상화 40주년의 의미보다는 국권침탈이라는 역사 문제인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냉정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특별한 해결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은 시간을 갖고 분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게다가 다음달에는 역사교과서 문제까지 불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한·일관계는 냉각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

우리정부 역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장 해결의 실마리도 없고, 또 어차피 꼬인 것 더 꼴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꼬인 한·일관계가 한·중·미·일, 동북아 관계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앞서도 독도 문제는 식민지 역사의 문제라고 지적을 했지만 우리정부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일관계 및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 예를 들면 지나간 한·일회담, 위안부문제, 강제연행, 강제노동, 원폭피해자 문제 등 포괄적인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사항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만들고, 나아가 이를 국제적으로 이슈화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가능하다면 유엔으로 들고 갈 수도 있겠고, 이것이 정부차원에서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민간단체를 적극 후원해서라도 주변 피해국과의 연대를 통한 국제적인 뉴스, 국제적인 이벤트로 만드는 일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일본 정부의 뼈 아픈 약점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도의적 책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35

지난 글 '한·일관계가 꼬였다고? 그럼 더 꼬아라'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흐름은 살펴봤다. 그럼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더 꽈야 되는 이유'를 통해서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중의 한 분인 츄오(中央)대학 명예교수 이토 나리히코(伊藤 成彦) 선생은 자신의 저서 『일본 헌법 제9조 이야기-전쟁과 군대가 없는 세계로』(번역본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강동완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에서 지금 일본 헌법이 1947년 5월 3일 반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여·야 구분 없이 헌법 개정에 뛰어들고 있는 현 일본 정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일본 헌법은 통상 ‘평화헌법’으로도 불린다. 그 근거는 일본 헌법 제9조 2항의 전쟁포기와 군비전폐에 있다. 이렇듯 헌법에 전쟁포기와 군비전폐를 명기하고 있는 국가는 현재 일본과 중앙 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공화국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세력들이 있으니 바로 자위대의 합법적인 군대화와 해외파병을 통한 군사대국화 야욕을 꿈꾸고 있는 新보수우익 군국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물론 일본 사회에서 개헌론의 역사는 헌법의 탄생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 이들 개헌론자들은 일본 헌법이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강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주 헌법 제정론·강압헌법론 등을 들먹이며 개헌의 불씨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토 나리히코 선생은 앞선 그의 저서에서 이들의 주장을 가당치 않은 거짓말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일본 헌법의 최초의 제안자는 전후 첫 내각의 수상이었던 시데하라 기쥬로(幣原 喜重郞)였고, 이 제안을 받아 들인 것이 맥아더 사령관이었다고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해 가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의회(참의원과 중의원)에서 호헌파가 적어도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헌론 자체가 큰 힘을 받지는 못했었지만, 코이즈미(小泉) 내각이 들어선 2001년 4월 이후 상황은 급변해서 이제는 의회 내에 개헌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반포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정치권이 유리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개헌론을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 할 것 없이 개헌론이 우세한 상황이라면 의회 내에 여·야가 합동으로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밀어 붙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투표에서 통과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토 선생은 또한 지적하고 있다. 사실 내가 뜬금 없이 '꼬여 있는 한·일관계'를 논하고자 하면서 일본 헌법 이야기를 길게 끌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개헌론의 마지막 단계인 국민투표에 대비해서 정치권의 개헌 분위기를 민간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정치권이 모종의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닐까라는 느낌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어 온 코이즈미 세력의 거대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자민당 창당 50주년이 되는 올 11월까지는 개헌문제를 마무리 짓겠다고 호언장담해 오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겠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불거진 중국과의 갈등, 대포동 미사일과 납치 피해자 문제로 연일 두들겨 패고 있는 북한, 거기다가 이제는 하나 남은 다정한(?) 주변국 한국과도 독도 문제로 냉각기를 맞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문제로 푸틴 대통령이 방일을 한다 못한다, 코이즈미 수상이 러시아를 간다 못 간다 하는 상황이다.

영토문제와 안보문제를 빌미로 주변국과 의도적인 갈등을 유발시킨 채 국민들에게 그릇된 민족주의를 강요하는 정부와 이를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하여 전하는 매스컴의 2인 3각 경주는 '개~헌' '개~헌'을 외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건 국가와 국가간 외교적 차원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본 국내적인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도 민감하게 부딪히는 군사적 팽창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 다시금 우리 정부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올 한 해, 한·일관계는 쉽게 풀기 힘든 냉각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오히려 이번 기회에 더 꼬고 꽈서 총체적으로 한·일관계를 재점검하고, 한국 내 과거사 청산의 계기로 삼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서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한가지로 한·일 시민연대의 활성화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다음달부터 불거질 역사 교과서 문제도, 앞서 살펴봤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도 결국은 국민적 지지와 여론이 중요한 향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의 한·일 시민연대는 한국의 친일·독재정권과 투쟁하는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 및 후원하는 성격이 강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전환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일본으로 돌려보자. 그리고 일본을 주체적 입장에 둔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를 고민하고 실천하자. 그래서 反헌법개정, 反역사왜곡을 막아낼 新한·일 시민연대를 조직하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10

노무현 대통령께서 담화문 형식을 빌려 내 놓으신 대일 외교 선전포고가 일본 열도를 강타한지 4일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강한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아무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 내에서는 물론이고 여·야를 비롯한 일본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그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코이즈미 수상이나 호소다 관방장관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미래지향적 관점에 입각해서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자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강경그룹 멤버들의 대 놓고 비난하기가 그것이지만 한국 국내용으로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자든 후자든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자의 경우는 이미 우리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을 하기로 하고, 후자에 해당하는 부류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가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이들의 본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외무성의 한 간부는 ‘담화를 몇 번 읽어봐도 한국이 어떻게 하고 싶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당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나는 한번만 읽어봐도 알겠던데… 다소 독해력이 떨어지는 인물이 일본 외무성에도 있는 모양이다.

또한 24일 있었던 자민당 외교 관계 합동 회의에서는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하자는 안 등이 나오기도 하면서 한국에 대한 강경론이 잇따랐다고 한다.

나는 이미 앞선 글에서 요즘 불거지고 있는 한·일 갈등의 원인을 일본헌법 개정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을 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바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의 문서 하나가 자민당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자민당이 창당 50주년을 맞이하면서 내 놓은 개정 <新이념·정강>이 그것이다. 전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국가를 실현한다. (2) 자국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고 하는 기개와 사명감을 갖고 이의 실현에 공헌한다」

결국은 (1)과 (2)의 앞뒤 순서가 바뀌기는 했지만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군대를 보유하고 해외파병이 가능한 보통의 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행 일본 헌법하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는 바꿔 말하면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미이고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우리정부의 대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결코 쉽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나 자국의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국을 끌어들여 위기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일본 국내만의 문제가 아닌 동북아 지역의 안전보장과 관련된 사안임을 감안해볼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정부가 내 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가 않고, 또한 한정될 수 밖에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물론이고, 앞으로 일본의 재군비와 동북아시아 세력 균형에도 관계가 있는 다소 포괄적인 수준의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한국, 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과거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국가들이 미국과 러시아까지를 끌어들여 동아시아 다자안보 협의체로서의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East Asia Treaty Organization) 설립을 적극 추진해 보자는 것이다. 즉, 주일미군을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군(軍)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닮은 점은 있으나 지향점은 많이 다를 수 있다.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소련(러시아)에 대한 집단안전보장의 성격을 띄고 서유럽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목표로 설립이 되었으나 동아시아조약기구(EATO)는 전적으로 일본의 안전보장과 군사적 지원을 목표로 설립한다는 것이 차이점 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15일 "6자회담을 발전시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국가 간 갈등을 다루는 기구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미국의 역할"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는데, 이 구상을 일본의 안전보장 문제로 돌려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현재 북핵이 문제가 되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도 일본의 안전보장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으로 그래서 이 제안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 같은 제안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가 있는데, 우선은 재군비를 원하는 일본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그토록 재군비를 하고 싶어 하는데 못하게 하는 방법 보다는 하되 그릇되지 않게 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또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분쟁 해결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동북아 문제는 동북아 국가들이 해결하라)을 십분 고려한 제안이다.

두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새롭게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독일과 일본이 걸어온 길은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틀 속에서의 재군비가 이루어지면서 과거 나치로부터 침략당했던 국가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어 투명한 과거사 청산과 재군비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상황은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했던 주변국들은 모두 미국에 의해서 사회주의라는 구실이나 이런 저런 핑계로 따돌림을 당한 채 미군 단독의 점령군 주둔 형식을 띄면서 미국의 기지국가로써의 식민지적 지배체제가 굳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일본사회의 거대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라도 이렇게 잘못 꿰어진 단추를 올바르게 바꿔 꿰도록 하자는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일본사회의 모순, 아니 더 나아가 아시아의 국가간 지역적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미·일 안보조약」을 「동아시아조약기구(EATO)·일본 안보조약」으로 대체하는 안을 만들어 적극 주장해 보면 어떨까 싶다. 또한 국제 사회에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대일·대미 외교의 유용한 카드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조약기구(EATO)의 틀 속에서 일본의 헌법개정과 재군비를 실현시켜 주고, 이를 통해 국제업적을 쌓을 기회를 부여토록 하자는 것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07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일 항의 시위가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일본언론에서야 반일시위라며 떠들고 있지만, 그것을 반일(反日)이라고 보기 보다는 항일(抗日)이라는 표현이 더 옳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일본쪽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닌 듯 싶다.

비록 유리창 몇 개 파손된 것이라고는 하나 일본 영사관이 타격을 당하는데, 중국 공안들은 팔짱을 끼고 구경만하고 있었다는 게 일본 언론과 정부의 불만인 듯 하다. 즉, 중국 당국이 항의 시위를 묵인 내지는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읽힌다.

이는 다시 말해서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중국에서의 이번 항의 시위를 중국 시위대와 일본 정부간의 충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국가간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비친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감상이다.

그래서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다소 과격한(?) 형태의 시위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칫 진실이 진실일 수 있도록 하자는 주변국 주장의 정당성이 일본에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고, 심지어는 이를 악용코자 하는 불순한 세력도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요 몇일 일본언론의 헤드라인은 거의가 주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항의 시위와 관련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그 시위 양상이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메인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 할 것이다.

오늘 텔레비전 각 방송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주요 뉴스 역시 반일시위와 관련된 것들이다. 돌이 날고, 오물이 투척 되고, 진압경찰과의 충돌 장면이 묘한 음악과 함께 사뭇 긴장감을 더하게 한다.

왜 지금 일본에서?

한때 한국에서 땡전 뉴스가 횡횡하던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보아오던 영상과 닮아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별반 새로울 게 없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의아스러운 점은 그런데 왜 지금 일본에서 20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가 이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 일본 정부의 성격을 제대로 분석해 봐야만 한다. 특히 코이즈미(小泉) 내각의 제1의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보는 것이 급선무라 할 것이다.

4년 전 코이즈미 총리는 정부 수반이 되면서 2가지를 약속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와 헌법개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이는 외교적 유·불리에 의해 언제든 불참으로 변경 가능한 사안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헌법개정과 관련한 문제는 보다 심각한 초당적·거국적 사안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이 헌법개정 문제는 비단 코이즈미 내각의 제1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자민당 50년 역사의 숙원 사업이자 일본 우익세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코이즈미 총리는 내각 결성을 명 받는 순간부터 - 아니 어쩌면 헌법개정을 전제 조건으로 총리직을 움켜 쥐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 개헌을 위한 준비 작업을 철저하게 진행시켜 왔고, 드디어 그 결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개헌 분위기는 아주 만개해 있는 상황이다. 사민당의 몰락과 구자민당 이탈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제1야당 민주당의 급격한 부상이 개헌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국민 투표라 할 것이다. 아무리 정치권의 분위기가 좋다고 해도 개헌의 최종 단계인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대국민 개헌 분위기 만들기에 코이즈미 내각을 비롯한 정치권과 보수우익 세력은 총궐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이즈미 내각은 주변국과의 의도적인 갈등 조장으로, 정치권은 개헌론의 공론화로, 보수우익 세력은 역사 왜곡으로 철저한 역할분담을 통해 목표 실현에 성큼 다가섰다고 볼 수 있다.

코이즈미 정권의 성격

사실 이번 중국에서의 항의 시위의 배경으로는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이나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 여러가지를 들 수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 아니었나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강경 발언으로 들썩이던 중국 여론에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어 가던 일본 유엔 상임이사국 반대 서명 운동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지 싶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사실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는 헌법개정 문제보다는 하위의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코이즈미 내각은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내각 구성시부터 개헌을 목표로 태어난 정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나 북일수교 문제, 러시아로부터의 북방영토 반환 문제 등은 아마도 코이즈미 총리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한 사적 추진 사업이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이 세가지 문제들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것이나 그것을 내각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사전 작업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들 세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툭 툭 불거지기 시작해서 별다른 성과 없이 질질 시간만 끌고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슈화 되는 시점 역시 정치적 격변기 내지는 대중적 지지도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코이즈미 총리는 취임초기 80%대를 넘나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가 이후 40%대로 곤두박질 치면서 상당한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것을 만회할 수 있는 특별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개헌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 불가능한 사항인데 떨어지는 지지도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것이 외교적 업적을 통한 지지도 만회라는 우회 정책이었고, 이는 코이즈미 개인의 명예욕과 맞물려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별다른 준비 없이 평양으로 달려갔던 것이고, 북방영토도 시찰을 했고, 유엔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겠다고 큰소리도 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개혁이나 사회개혁, 정치개혁 등 일본 국내 문제의 해결은 엄청난 국민적 저항 내지는 이탈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코이즈미 내각의 과제는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코이즈미 총리는 코이즈미 개혁을 줄창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퍼포먼스 이상이 될 수 없음은 코이즈미 개헌 내각이 안고있는 풀 수 없는 숙명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헌법 개정을 위한 분위기 조성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게 되고, 과거와 같이 전쟁이 가능한 보통의 일반국가가 되는 것. 그것이 내년 상반기까지 예정되어 있는 코이즈미 내각의 과제이며, 이 과제를 완수하고 코이즈미는 물러날 것이다. 그래서 올 해가 더 없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올 해 안에 개헌안이 완성이 되고 내년에는 국민투표를 통한 최종적인 개헌으로 달려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슬슬 회자되기 시작하는 국민투표법안을 통한 미디어 통제설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개헌은 주변국에 대한 약속 파기다

이제 우리 정부도 보다 더 강력하게 일본의 개헌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를 우리가 거론하고 나서는 것은 자칫 내정 간섭 시비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에게도 일본 헌법을 지켜내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와 같이 과거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엄청난 희생을 당했던 주변국들의 뼈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픔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주변국에 대한 약속으로 일본은 평화헌법을 만들었고, 5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일본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우리의 논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안보불안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이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 헌법을 개정하고 군대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에 미군이 아닌 연합군을 두는 제도를 기본으로 상정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것은 이 제도는 실현 가능성의 유무 보다는 오히려 개헌 저지책으로써의 의의가 더 크다는 사실이다.

지난 글에서 필자가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연합군이라고 명명했던 것으로 독일이 앞선 선례로 거론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05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 핵 문제에 이은 미사일 발사 문제로 인해 미·일간 대북제재 목소리가 다시 언론을 타고 흘러나온다. 일본 언론들의 북한 움직임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야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한마디로 적대적 긴장관계를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과 관련해서도 당시의 정확한 근거도 없는 설에 의존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기민함을 보여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한국이나 미국측 입장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일본의 안전보장에 엄청난 위험요소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인식인 것 같다.


미·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북제재와 관련된 사항 역시 이미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문제, 그리고 요코다 메구미(
横田めぐみ)씨의 유골 파문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오던 것으로 전혀 생소한 것이 못 된다. 한때 일본 정계 한편에서는 북한 인권법이 논의 되기도 했었고, 경제제재를 검토하는 등의 요란을 떨다가 한국 정부와 미국 등의 반대로 잠잠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이 나오면서 일본에서도 대북제재 설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핵확산 방지조약(NPT) 재검토 회의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마치무라(
町村) 외상이 2일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핵 계획의 완전 폐기와 6자회담에 무조건적인 조기 복귀를 촉구하는 메시지의 발표를 참가국들에게 호소하였다.


또한 라이스 장관과의 회담에서는 라이스 장관이
6자회담이 잘 되지 않을 경우 다른 선택도 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6자화담의 현상황은 상당히 문제다. 저들의 장난질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유엔 안보리 협의로 가져갈 수도 있다는 양 정부의 생각의 일치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이와 같은 움직임은 결국 미·일 양국의 특정 세력들의 희망사항이기도 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북핵 문제가 장기화하면 할수록 이를 즐기는 세력들의 보폭도 그만큼 넓어질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즉,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미·일 동맹 강화라는 명분에 힘을 실어주게 되고, 또한 장기적으로는 미·일 동맹 강화가 목적하고 있는 대공산권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에도 좋은 구실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이는 일본내의 군국주의 세력이 열망하는 헌법 개정을 통한 일본군 재무장으로 이어져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 일본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유사상황 발생시에 미·일 방위조약에 의거해 일본군의 즉각적인 자동개입과 일본의 지역적 패권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저명한 진보학자 이토 나리히코(
伊藤 成彦) 주오대학(中央大學) 명예교수 역시 자신의 저서 『일본 헌법 제9조 이야기 전쟁과 군대가 없는 세계로』(
번역본: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 강동완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에서 이것의 발단으로 1994년에 불거지기 시작한 소위 북한 핵 의혹’을 지목하고 있다.


즉, 「미국이 북한의 핵 의혹 해소를 위해 이라크 폭격 때처럼 북한을 정밀 공격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력이 필요한데, 아직 일본의 전쟁협력 체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북한 공격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보다 더 철저한 일본의 협력을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현실인식과 정세판단을 접하면서 다소 의아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2가지인데, 우선 하나는 앞서와 같은 인식론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절대적 우위를 점한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절대적 패권자의 위치를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현재의 미국을 보면서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믿느냐라는 점이다.


물론, 일본은 현재 세계 여느 강대국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군사력과 EU와 동등한 수준을 자랑한다는 핵 융합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헌법만 개정해서 일반 군사국가화 할 수 있다면 미국의 우산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무력 행사가 가능할 것이라는 야심론 또한 있을 법한 가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지나간 역사가 증명해 보이지 않았는가? 군사대국이란 불기둥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드는 부나비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두 번째는 중·미 관계가 이들이 보는 것처럼 과연 적대적 관계이기만 한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미국내의 어느쪽 신호를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견해는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예전부터 미국 내에 존재하는 대중국 유화정책이라는 또 하나의 흐름을 너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아함이 그것이다.


특히나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현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은 중국의 저렴한 제품이 유입됨으로 인해 자국내의 물가안정에도 상당부분 도움을 받고 있고, 뿐만 아니라 중국의 13억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거대한 수요시장으로서의 중국시장 개발을 통한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해소는 불안전한 미 경제 활성화에도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이것이 성공할 경우에는 그 대상이 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경제 4국)로 까지 확대되어 그 파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절대로 중국과의 적대적 공생관계의 끈을 놓을 수가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단적으로 말해 몰락중인 거대 제국의 마지막 희망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흘러나오는 다른 한쪽의 시그널은 철저히 외면한 채 사다리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한 일본 정부의 외눈박이식 외교 행태는 일본의 역사를 60년 전의 그날, 바로 패망의 그날로 되돌려 놓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듯이 보여지는 것은 과연 나만의 착각인가?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03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이라크에서 또 한명의 일본인이 무장조직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한다. 우선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 사건의 경과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라크 무장세력의 범행 성명에 의하면 영국계 세큐러티사에 근무하는 일본인 사이토 아키히코(44)씨가 납치되었다. 이라크 서부에서 습격 당해 행방불명 된 것으로 일본정부가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외무성은 무장세력이 인터넷에 올려 놓은 사이토씨의 여권도 본인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리고 이라크 주둔 중인 미군 시설에서 경비 관련 업무를 위해 필요한 미 국방부가 발행한 신분증 카드, 무기 휴대 허가증 등도 공개됐다.

사이토씨는 경비회사 하트 세큐러티사 런던 지사 소속으로 이라크 서부에서 미군 기지 경비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일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사이토씨를 포함한 수십 명이 차로 이동하는 중 알 아사드 근교 히트에서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교전 현장은 다양한 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상당히 처참한 상태였다고 한다. 교전 당시 이라크 보안군 12명과 외국인 경비업체 직원 4명은 현장에서 모두 사망했고, 사이토씨는 교전으로 인한 총상을 입고 인질로 붙잡혔다고 이 무장단체는 밝혔다.

일본인을 납치한 단체인 '안사르 알-순나'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조직이다. 지난해에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네팔인 12명을 납치해 살해했고, 쿠르드 지역 자폭 공격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의 미군과 이라크 보안군은 이 조직이 다른 무장단체와 연계를 유지하면서 시리아 국경 사막 지대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인질로 잡힌 일본인은 중상을 당했으며 우리는 조만간 그를 찍은 비디오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일본인만을 살려둔 채 납치한 이유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으며 이후 추가 성명이나 비디오 공개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본정부 대책마련에 분주

일본정부는 10일 오전 1시 수상관저의 위기 관리 센터에 연락실을 설치했다. 또한 외무성에도 오전 2시에 마치무라 외상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 본부를 마련해 사이토씨의 가족이나 하트사, 이라크 및 미국 정부와의 연락을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마치무라 일본 외상도 "관계자들이 사이토씨 가족을 접촉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고이즈미 총리는 피랍소식을 듣고 이라크 인근 국가 공관에 정보 수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노 방위청 장관은 내각회의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사마와에서의 자위대 활동에 영향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일본은 5백 여명의 자위대를 바그다드 남부 사마와 지역에 파병해 놓고 있다.

해외주재 일본인이 미군의 경비 업무를 수주한 민간회사로부터 분쟁 지대에 파견되어 일어난 사고와 관련해서는 일본정부에서 상정해 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응에 외무성 간부는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언론들이 전한다.

일본 외무성 간부에 의하면 사이토씨는 1979년에 육상 자위대에 입대해서 제1 공정단에 배속되었다가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 공정단은 육상자위대 소속의 유일한 낙하산 부대이다. 훈련의 강도나 위험도, 작전 수행 능력에 있어서 육상자위대의 최정예부대라고 한다.

육상자위대를 제대한 후 22살에 프랑스의 외국인 부대에 입대해서 21년을 근무했고, 작년 제대와 함께 사설 경비회사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해외에서의 전쟁·분쟁에도 꽤 참여했다고 한다.

이라크에서 납치된 일본인들은 이라크전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6명이었다. 그 가운데 5명은 무사히 풀려났었지만 1명은 일본 자위대의 철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작년 10월에 살해됐다. 일본 정부는 최악의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크게 염려하면서 대책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내 탓이오!

이라크 무장그룹에 의한 사이토씨의 신병구속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나는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전쟁의 민영화’에 대한 실태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사회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병사들은 종래의 용병과는 약간 이미지가 다르다고 한다. 즉, 사령부가 지휘하는 소탕작전 등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 경비나 요인 경호 등 작전 수행 이외의 임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민간 군사 청부업자로 부른다. 이와 같은 민간 군사 청부업자들이 현재 이라크에는 2만 명 가까이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임무를 명확하게 선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전투행위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초부터 지적되어 온 만성적인 미군의 인원 부족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전쟁의 효율화’를 목표로 하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방침아래 업무의 민간 위탁은 오히려 장려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겠다. 즉, 본래대로라면 군이 실시해야 되는 임무의 상당 부분을 민간이 맡아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넓게 봐서는 용병임에 틀림없다. 용병은 국제법으로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묵인 또는 장려하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분명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일본 정부 역시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늘 아침 일본의 주요 텔레비전 뉴스에는 납치된 사이토씨의 동생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상당히 오랜 시간 방영되었다.

주요 요점은 이렇다. “형은 그 일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께 심려와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본인(형)은 44세의 어엿한 성인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본 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동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일본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일본 정부를 지지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무사히 돌아온다면 무슨 생각으로 현지에 갔으며, 그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이 납득할 때까지 설명하라고 하고 싶다”

이게 사지에서 죽음과 직면해 있는 형을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란다. 세상에. 허 참, 세상 어느 부모형제가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제 피붙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나라면 말이다. “우리 형 살려주세요. 꼭 살아서 돌아오게 해주세요” 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우선은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바로 저 겁먹은 동생의 머리 속에는 오늘의 일본 사회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아니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책임’ 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1년 전이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NGO 활동가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이라크 무장그룹에 구속 되었을 때, 그들의 행동과 판단을 비판하면서 또 구출비용을 청구하면서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와 총리에 의해 유포되어 널리 유행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정부의 무모한 자위대 파견에 대한 '책임면피'에도 톡톡히 한 몫을 했다.

당시 대다수 언론들은 이들을 죽어라고 두들겨 팼다. 요지는 무책임한 놈들이므로 맞아도 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느 누구 하나 당당하게 이런 얼토당토 않은 ‘자기책임론’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바로 그 침묵으로 생긴 어두운 그림자가 지금 일본 사회를 서서히 삼켜버리며, 민중들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오늘의 일본 사회는 이처럼 가족애에 바탕을 둔 아주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인도주의 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오염된 자식들이 강요하는 철지난 국가주의가 스멀스멀 기어들고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자기 책임을 방치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 시키려 하지도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니체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