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3. 7. 18:30

하노이 회담이 끝나고 귀국길에 오른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사귐에 있어 일사천리란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건 굉장히 계산적인 면에 국한된다. 다툼과 갈등은 믿음과 의리로 가는 중간 다리와 같다. 살아보니 그렇다. 개인(남녀) 간 연애에도 파국 같은 상황이 몇 번은 지나야 비로소 허니문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다. 하물며 70년을 적대관계에 있던 사이라면, 게다가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일합을 겨뤄 무승부를 이룬 상대라면, 아직도 멀었다. 더 볶고 지지고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게 인내와 배려를 통한 신뢰 쌓기다. 현명한 친구 한 명 곁에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금상첨화이고 말이다.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미국의 미래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선진사회와 미개사회를 나누는 기준을 신뢰에 두고 있다. 신뢰가 형성될 때에야 비로소 선진사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선진적 관계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한 방향으로 튀는 축구공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 정도의 차이다. 즉, 예측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을 기대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재 역할’을 당부했을까? 이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부탁하기 쉽지 않은 중차대한 역할이다. 두 정상이 상호 간에 서로의 입장이 예측 가능하다는 말이다. 중재란 모름지기 공명정대해야 하며 이치에도 밝아야 한다. 일방의 뜻만 전달해서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 상호 간 주고받음에 치우침이 없어야 하고 중재대상 쌍방의 마음을 훤히 읽고 있어야 훌륭한 중재가 될 수 있다.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부가 사실이라면,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 역할에 적임자임을 신뢰한 것이 된다. 이 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문재인 대통령은 꿰뚫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상호교감에서 통하는 바가 있었다는 말로 바꾸어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통하였는가? 나는 예측한다. 미국의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한미 두 정상 간 통함이 있었다고 말이다. 우선, 내 예측의 전제부터 확실히 해야겠다. 그래야 이 글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워낙 첨예한 문제라서 그렇다.


이 글의 전제는, 짧은 기간 안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그동안의 내 글들이 말해준다.(관련 글 보기; https://www.kangdongwan.com/385) 다만, 분명한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그건 전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핵확산방지 정책의 역사에서 6차 핵실험을 성공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핵전략 자산을 완전하며 불가역적으로 파괴한 전례가 없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그건 리비아 방식과 같은 것인데, 북한의 핵무기 개발 초기단계인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으로 시간 이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야 들어줄 수 있겠으나, 이미 완벽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핵전략국가' 북한에게는 리비아식의 폐기요구가 적절치 않을뿐더러 셈이 쉽지도 않다. 북미정상회담은 '핵전략국가 간 협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 연구소(Middlebur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at Monterey)의 제프리 루이스(Jeffrey Lewis)는 미 공영 라디오 방송(NPR) 기고문을 통해 "북한이 지금과 다른 미래를 약속받는 대가로 일방적으로 핵보유 능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국제협상이라는 현실보다는 액션 영화에나 적합한 미국의 권력에 대한 환상에 가깝다"며[각주:1] "왜 미국은 북한이 기꺼이 그 모든 것을 거래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는가?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에 버금가는 핵억지력 개발을 완수한 북한이 단지 맥도날드 몇 개와 평양의 트럼프타워의 대가로 이러한 핵전력들을 그저 넘겨줄 것 같았느냐"[각주:2] 강력하게 비판했다.[각주:3]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이 하노이 회담 직후 미국의 '계산법'에 의아함을 표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이를 전제로 미국의 ‘국익’에 대해 살펴보자. 오바마(Barack Obama) 정부 들어 중국의 부상과 2008년 금융위기라는 내외부적 배경 하에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가 미국의 대외패권전략으로 부상했다.


이혜정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중시 정책’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전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개진하였다.[각주:4]


첫째,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의 부상뿐만 아니라 미국 내 정치경제적 위기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 뿌리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이다.


둘째,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군사, 외교, 경제적 측면을 바탕으로 한 ‘삼중 통합전략’이다. 또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정책의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방부가 아시아 지역의 동맹이나 파트너들에게 군사 지원을 확대하게 되면 향후 양국 간의 외교 강화는 물론 경제적 결속력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아시아·태평양을 겨냥한 미국의 ‘지역전략’이 아니라 전 세계를 염두에 둔 ‘세계전략’이다. 9.11과 세계경제 위기로 위축된 미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을 통해 패권을 재건축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미국의 국내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지역적 패권을 강화·유지하기 위해서 ‘아시아로의 회귀’는 불가피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아시아 중시 정책이 금융위기 이후의 전개과정이라면, 그 이전에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취하고 있던 정책은 ‘힘의 균형론’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한·중·일 3국의 힘이 균형상태를 이룰 때 동북아시아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관련 글 보기; https://kangdongwan.tistory.com/391)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바람 잘날 없던 한반도의 부침이 이를 잘 증명해 준다. 역사적으로 대륙세력보다는 힘이 쇠약했던 탓에, 해양세력의 부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과오로 인해 심하게는 식민지배의 참상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보면, 이렇듯 동북아시아의 힘의 균형은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동아시아 전체에까지 평화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신의 한 수로서 작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대일로라는 명분하에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뻗어나가고 있는 중국의 힘을 견제함은 물론이고 잠재적 군사대국이자 해양세력인 일본의 팽창야욕을 동북아 힘의 균형을 통해 억제·제재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도 부합한다. 게다가 미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한 발 떨어져서 패권을 누릴 수 있다. 즉, 패권비용이 절약된다는 말이다. 이근욱은 저서 《이라크전쟁》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미국이 직면한 위협이 중국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은 이 시기(필자 주: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기)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강대국이든 새롭게 부상하는 경우에 기존 세력균형 상태에서의 안정성이 저해되고 전쟁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중국의 힘을 강화하는 경제 교류와 투자를 줄이고 일본이나 한국 등 동아시아 동맹국의 군사력 증강을 촉구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한편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줄어든다면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등의 방식으로 서로 협력할 것이며, 미국은 역외균형자(offshore balancer)로서 힘을 비축하고 문제 발생 시 최후의 순간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각주:5]


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한 가지 정책만이 초지일관 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 용어에 페르조나(persona)라는 게 있다. 한 개인이 보여주는 양면적이며 입체적인 다양한 성격의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정에서의 그와 직장에서의 그 그리고 성당이나 교회에서의 그가 갖는 얼굴(성격)의 다름에 주목한 이론이다. 이게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하나의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때의 환경이나 상대에 따라 다른 전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의 아시아 중시 정책 혹은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미국 내에 존재한다. 강·온전략으로서 대략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강력한 관여론이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으며, 미국이 여전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전략적 선택은 강력한 관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강력한 관여론의 주장이다. 


둘째, 조건부 관여론이다. 조건부 관여론 역시 큰 틀에서 관여전략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능력이 갖는 한계, 미국과 중국의 상대적 국력격차에 대한 평가에서 강력한 관여론과 쟁점을 형성하면서 보다 유화적인 중국 전략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조건부 관여론은 봉쇄론이나 강성균형론은 물론, 강력한 관여론 같은 공세적인 전략이 미중관계의 긴장을 야기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셋째, 강성균형론·중국봉쇄론이다. 이들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목적을 중국 견제로 설정하고, 중국의 부상에 대한 강력한 균형(hard balancing)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강성균형론은 미중 양국의 상호이익의 영역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절대적 이익(absolute gains)이 아니라 ’상대적 이익(relative gains)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넷째, 역외균형자론이다.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의 대전략을 주장하는 역외균형자론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과감한 축소와 자제의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미국이 이 지역에 더 이상 안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외균형자론의 핵심 주장은 미국의 경제력이 쇠락한 상황에서 공세적인 대외개입은 더 이상 미국의 이익이 아니라는 것이다.[각주:6]


이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뿐만 아니라 대개의 국가들)의 대외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로 일관되게 수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외교적 불협화음 같은 것도 불거져 나오고 하는 것이다. 지난 2차 북미정상회담도 그 하나로 볼 수 있다. 볼턴(John Robert Bolton)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악(?)영향도 있었겠으나, 한 정부 내에서의 세력 간 주도권 다툼도 그러려니 하며 이해해야 한다. 천하의 볼턴이라고 한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모두를 완벽하게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재주를 부리거나, 핵물질의 성분을 탈이 없는 무해 산소로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볼턴의 방식이 먹혀들기에는 너무 늦었다. 즉, 대세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 역할이 때로는 빛을 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척이 없는 듯 보이는 이유도 이상의 사실들과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의 한 쪽 상대방인 북한의 의중도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중재자의 역할이 어려운 이유다.


결론으로 가자. 나는 앞서 미국의 국익을 이야기 했고,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쉽지 않은 의제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미국의 이익(국익)에 합치되도록 설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 한 중심에 중국의 부상이 존재하고 있음도 살펴봤다. 결론은 이것이다. 부상 중인 중국 견제책(동북아 힘의 균형)으로써의 한반도 핵전력. 아쉽지만 문제는 현재 북미 상호 간에 그렇게까지 할 정도의 신뢰(믿음)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더 큰 장애는 북미관계와 관련해 미국 국내의 취약한 여론 형성 상황, 언론들의 반(反) 트럼프 성향 등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즉, 핵무장한 친구(nuclear-armed friend)로서의 북한이라는 정서적 충격(?)을[각주:7] 최소화 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 또한 미처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 지점에 문재인 정부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각주:8] 또는 중재 역할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흔쾌히 도맡고 나서야 할 중책일지도 모르겠다.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다.



  1. The U.S. position — that North Korea must unilaterally abandon its nuclear capabilities in exchange for promises of some different future — is a kind of American fantasy about power that is more suited to an action movie than the reality of international negotiations. [본문으로]
  2. And so, why would the United States expect North Korea to willingly trade away that advantage in its entirety? Why would North Korea, having completed the development of a nuclear deterrent that puts it in a class with countries like China, India, Pakistan and Israel, simply apologize and turn over these capabilities in exchange for a couple of McDonald's and a Trump Tower Pyongyang? [본문으로]
  3. https://www.npr.org/2019/03/01/698909173/opinion-trump-just-walked-away-from-the-best-north-korea-deal-hell-ever-get [본문으로]
  4. 이혜정, 「오바마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중국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패권 재건축」,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3, pp.7~8 [본문으로]
  5. 이근욱, 「이라크전쟁: 부시의 침공에서 오바마의 철군까지」, 『한울』, 2011, pp. 64 [본문으로]
  6. 공민석,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과 2007-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7 [본문으로]
  7.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적국'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1년도에는 2%만이 북한을 주요 적국으로 지목했었으나, 2005년에는 22%로 이라크와 함께 최대 적국이 되었다. 또한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시카고 국제문제 협의회(CCGA)의 미국인 외교정책 여론조사에 의하면 2016년에는 미국인의 60%가 "북핵이 미국에 위협"이라고 응답했는데, 2018년 조사에서는 7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의 대응과 관련해서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강력한 경제 제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본문으로]
  8.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는 외국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자국의 역사, 전통, 문화, 예술, 가치, 정책, 비전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증진시키고, 자국의 국가이미지와 국가브랜드를 높여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외교활동을 말한다. 민간외교, 도시외교는 공공외교의 하위 개념이다.(위키백과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