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8. 10. 29. 19:11

일본 아베(安倍晋三)총리가 3일 일정(10월 25일~27일)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7년만의 방중이었다 하니, 여러 가지 면에서 쌍방 간에 만나야 할 필요성이 절박했음을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제일 급박한 현안은 뭐니 뭐니 해도 미국 · 중국 간의 무역전쟁, 그리고 남 · 북 · 미를 주축으로 한 한반도의 평화 및 화해 분위기 조성 국면이 되겠다.


일본 언론이 전하는, 이번 중 · 일회담에서 양국이 확인한 3가지 중요한 원칙은 첫째, 경쟁에서 협력으로. 둘째, 위협이 되지 않고 상호협력 하는 파트너쉽. 셋째,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로의 발전이다. 더없이 현학적인 수사의 나열이다.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갈등관계(영토문제, 과거사 문제, 역사 왜곡 등)를 조성하여 일본위기론을 확산,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평화헌법[각주:1]을 개정, 끝내는 자신들이 원하는 보통국가화(군국주의)의 길로 가려고 하는 일본 보수우익세력들의 노골적인 과거로의 회귀 책동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 중 · 일 관계의 복원은 멀고도 난망한 일이다.[각주:2]


일본 국내에서도 언론의 기대 섞인 논조와는 달리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일본 최대 포털싸이트인 야후재팬[각주:3]에 달린 해당 기사들의 댓글들만 봐도 그렇다. 긍정적인 댓글이라는 것도 “아베총리가 말하기를 자신은 사상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했다. 정치인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도 대국적 차원에서 해야만 한다”는 정도인데, 이를 긍정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외국 언론 및 전문가들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각주:4] 중 · 일관계가 미국의 눈치 보기와 해소되지 않은 역사적 앙금들, 복잡다단한 현안 등으로 인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중 · 일 양국 정상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만남을 가졌다는 뉘앙스도 강하다.


한편, 북한의 노동신문은 최근 ‘협력으로 미국의 제재에 대처하려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라고 하는 분석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한 마디로 동아시아의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서재정은 이를 ‘아시아의 다층적 세력전이 및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라고 표현한다.[각주:5] 이러한 현상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역내 세력전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역외 세력전이,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역간 세력전이의 세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시아의 경제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유럽보다 높아지는 것에 따라 미국도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비중을 높이고 있다. 냉전시기 외교 전략의 중심이 대서양이었고, 9 · 11 이후 미국 전략의 초점이 대테러 전쟁에 맞춰졌다면 이제 미국의 전략적 관심의 한 가운데에는 아시아가 놓이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주변국들이야 그렇다 치고, 나의 모든 관심사는 그렇다면 한반도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특별한 게임체인저 없이, 기존의 구도를 유지하는 선에서(큰 판세의 변화는 걸림돌이 많을 것이기에) 북 · 미관계의 개선과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할 수 있을지를 간략하게 검토해 보겠다. 이를 위해서 전제되는, 확인이 필요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첫째, 북한 핵의 존재 여부. 둘째, 미국의 대외적 핵정책. 셋째, 북 · 미관계의 향후 전망이 그것이다.


우선, 북한 핵의 존재 여부다. 북 · 미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최대 논란거리가 북한 핵에 관한 사안으로 워낙에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그 진위여부가 불투명하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핵무기의 보유는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이다. 인도나 파키스탄 등 신규 핵무기 보유국들의 실험과정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미 북한은 추가적인 핵실험이 필요 없는 단계에까지 진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단적으로 미국이 그토록 주장하는 비핵화라는 단어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북한에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그렇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성능 즉, 기술력의 우열가리기(시비걸기)라 볼 수 있다.[각주:6]


다음은 미국 정부의 대외적 핵정책[각주:7]에 대해 살펴보자. 겉으로 드러난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은 핵억지력이다. 미국과 소련 양국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에 의한 상호억지력 밖에서 다른 신규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 또는 보유하는 문제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래서 핵무장에 성공한 여타의 신규 국가들 예를 들면 이스라엘[각주:8], 인도-파키스탄[각주:9] 중국[각주:10] 등은 핵무기를 만드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문제 못지않게 미국(소련)의 견제와 압박을 이겨내야 했다. 미국과 소련은 신규 국가들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당근으로써 핵우산이라는 핵확산억지력을 제공하든가, 이게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채찍으로 군사 공격이라는 옵션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았다.[각주:11]


지금의 국제정세 하에서 핵무기의 보유 여부는 한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여타 핵무기 보유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는 지극히 ‘이성적 · 합리적인(rational)[각주:12]’ 행위로 많은 학자들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각주:13] 물론, “국제관계이론에서 말하는 합리성(rationality)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니라 수단-목적 관계(means-ends relations)에 있어서 목표에 대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각주:14]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미국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대외적 핵무기 전략을 쥐락펴락했는지를 살펴보자.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유일 패권국 미국의 의중이었기에 그렇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종성의 글 “다른 나라 핵 어쩌지? 미국 머릿속에 가득한 ‘이것’-이스라엘, 중국, 인도, 파키스탄의 핵을 대했던 그들의 태도”[각주:15]을 참고하자.


[중략]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직후부터 핵개발을 추진하다가 1956년부터 프랑스의 기술 지원을 받아 1960년대에 핵보유국이 됐다... [중략]...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직후부터 핵개발을 추진하다가 1956년부터 프랑스의 기술 지원을 받아 1960년대에 핵보유국이 됐다... [중략]... 중국은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압박 속에 핵개발을 추진했다... [중략]... 할 수만 있다면 중국도 비핵화시키고 싶겠지만, 여의치 않으므로 이를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 [중략] ... 인도는 1974년 5월 18일 지하 핵실험을 단행했다... [중략]... 인도 핵무기는 미국보다는 다른 나라들을 겨냥하는 측면이 컸다. 그중 하나는 파키스탄이다... [중략]... 파키스탄은 1974년 인도 핵실험에 자극받아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중략]... 인도 핵무기는 파키스탄 핵개발 및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중략]... 핵협상에서 미국의 최상위 원칙은 비핵화가 아니라 '국익'인 것이다. 비핵화는 하위 원칙이라 할 수 있다.[각주:16]


마지막으로 북 · 미관계에 대한 향후 전망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일종의 중국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견해[각주:17]가 있은데, 물론 이 논리는 어느 특정세력만의 인식이 아니라 보편적인 ‘북한문제의 중국문제화’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설사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이러한 인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리단과 전형권은 "지금까지 중국은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의 대북 영향력 행사를 자제해온 측면도 있지만 영향력 행사를 시도한 경우 실제로 실패한 측면도 보인다"며 중국에게 실질적인 대북 영향력이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각주:18] 그런가 하면,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국의 전문가[각주:19] 및 미 국방 관리들[각주:20] 역시 중국의 대북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북한 문제의 실력자이자 중재자임을 자처했던 중국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중국 주도 6자회담의 실패에 이어, 올 해 들어서는 북 · 미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도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함으로써 ‘실력과 진실’[각주:21]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즉, 밑천이 드러난 셈이다. 대신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한국정부이다.


참고로 중국 역시 미국과의 수교문제에 있어 지금의 북한과 비슷한 전철을 밟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 · 중수교가 정상궤도에 오른 것은 이로부터 약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다시 말해, 중국이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인공위성) 실험의 막바지에 가서야 비로소 미국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대화의 테이블로 나왔다. 서둘러 비밀리에 키신저를 중국으로 보냈고(1971년 7월), 이후 닉슨대통령이 베이징을 공식 방문(1972년 2월)함으로써 양국 수교의 물꼬를 텄다. 이때 중국과 미국의 가교(중재자) 역할을 했던 이는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였다. 키신저의 자리에 폼페이오를, 닉슨의 자리에 트럼프를, 차우세스쿠의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을 놓으면 시공간을 넘어서 중국과 북한의 대미외교가 상당히 닮은꼴 형태로 진행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본 역할론의 한계다. 전후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방 역할을 톡톡히 해 냈던 일본에 대해서 미국이 회의감에 따른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각주:22] 군사 · 경제적으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비교할 때 일본의 존재성이 점점 노쇠화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일본의 퇴색되고 있는 존재감, 여기에 한반도가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세력판도에 미세한 균열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신규 핵보유국들의 지위 인정과 한반도 비핵화: 핵이냐? 미사일이냐?


앞서 미국의 대외적인 핵전략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핵확산 방지’보다는 ‘자국의 이익(=국가 안보)’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음이 미국의 전략임을 논증했다. 또한 앞서의 여타 신규 핵보유국 대우를 받는 국가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는지도 서술했다. 역시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면, 아니 자국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신규 핵보유국과 상호 유대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북한 핵 역시 신규 핵보유국들과 같은 잣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관건이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은 ‘핵억제력(nuclear deterrent force)’이란 측면에서 단호하고 일관적이다. 현재까지도 그 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2009년 1월 13일자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보자.


미국의 핵위협이 제거되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없어질 때에 가서는 우리도 핵무기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반도 비핵화이며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의 근원적인 청산이 없이는 100년이 가도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대관계를 그대로 두고 핵문제를 풀려면 모든 핵보유국들이 모여 앉아 동시에 핵군축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각주:23]


(남과 북을 아우르는)한반도 비핵화는 무엇보다도 상호 · 호혜주의에 입각한 윈-윈전략에 기반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당사자인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은 물론, 더 나아가 주변국 모두의 불가역적인 핵무기의 제거 및 핵 위협으로부터의 검증 가능한 안전이 보장될 때에야 비로소 실현 가능한 문제다. 어느 한 쪽만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고집하거나, 기존의 핵 5대 강국들(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이 누리고 있는 불평등한 지위의 연장선상에서 단지 신규로 진입하려 한다는 이유로 차별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에 의존하여 해결하 해서는 상호불신과 갈등만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이는 서로(세계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님은 너무도 자명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은 1968년 구성되었다. NPT를 통해 핵무기 보유국의 기득권을 서로 보장하고, 비보유국들에 대해서는 비핵의무와 핵물질 이용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그 주된 내용은 핵의 비확산, 핵무기 군비 축소, 핵 기술의 평화적 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핵 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조항을 담고 있는 핵무기의 비확산에 대한 조약 제3조에 따르면 비핵무기국의 금지사항으로 핵무기의 제조, 보유, 획득을 들고 있으나 양도할 수 없는 권리(inalienable right)로서 평화적 목적으로의 원자력 연구 및 이용은 보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핵화를 그토록 강조하는 주요한 이유는 핵무기의 위험성에 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 멕시코주 알라마골드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같은 해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 500미터 지점에서 핵폭탄 일명 ‘리틀보이’가 폭발하였다. 순간, 34만 명 히로시마 인구 중 8만 명이 즉사하였으며, 그해 말까지 14만 명의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피폭 피해자들 또한 부지기수다. 이후 세계는 핵무기의 시대로 진입하였다. 핵무기가 가진 가공할만한 위력 앞에서, 더구나 그것을 사전에 예방할 아무런 방책이 없는 절대적 악마의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핵무기는 공격용 무기로써가 아니라 방어용, 심지어는 협박용(위협) 무기로써 기능하고 있다. 핵으로부터 인류의 파멸을 방지하겠다는 (불평등한)고육지책에서 나온 게 바로 ‘비핵화’란 용어다. 즉, 위험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비핵화는 ‘무(無)핵화’가 아닐 수도 있다. 핵무기가 존재하되, 그 핵이 위험하지 않게 잘 관리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비핵화’의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한 국가가 이미 성공적으로 확보한 핵무기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기(CVID: completeverifiableirreversible dismantlement)'할 방법도 없고, 그러한 전례 또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통제 불가능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 보고자 말이다.


서울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중간선거 지원유세에서 북한과의 관계가 “정말 잘 되고 있다”며, 자신은 “핵실험이 없는 한 (회담이-필자 주)얼마나 오래 걸릴지에 상관 안 한다고 내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면서 “더는 로켓도, 핵실험도 없고, 인질들도 돌아왔으며 우리의 위대한 영웅의 유해도 송환되고 있다”고 부연했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발언[각주:24]이기도 한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에 한국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의 핵보유에 대해 명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바 있다는 점을 들어 핵확산 방지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에서 다소 비켜나 있는 이슈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차적 관심은 국제 문제보다는 국내 문제, 안보보다는 통상문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모든 대외관계나 안보정책은 미국의 이익에 대한 판단을 기초로 펼쳐질 것[각주:25]”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이익 즉, 국가 안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당장은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핵문제[각주:26]라고 한다면, 핵보다는 오히려 미 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단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의 개발 및 실험에 더 신경이 쓰일 수도 있다. 북한이 탈냉전기 들어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순수 방어용 무기 개발의 차원과 대내외 과시용이다. 둘째, 수출을 통한 외화 벌이용이다. 셋째,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라는 김정일시대 통치담론 실천의 차원이다. 넷째, 대외 협상용에 관한 것이다.[각주:27] 북한이 7월 중순 해체 작업에 들어갔던 동창리 서해 발사장은 6 · 12  · 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폐쇄를 약속했던 미사일 엔진 실험장이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여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를 시작으로 최근인 2017년 11월에는 '화성-15형'을 고고도궤도(lofted trajectory)로 시험 발사하였다. 미 전역에 대한 공격이 가능한 성능이라는 평가와 함께 북한은 대대적으로 '핵무력(핵무기+운반수단) 완성'을 선언하였다.



한 번의 비극, 한 번의 희극: 역사는 반복된다


모든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항상 전례가 있는 한에서, 이를 전제로 풀어나가야 한다. 특수한 상황에만 매달려 연연하는 것은 문제를 풀고 싶지 않다는 부정적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이상의 논의들을 염두에 두고 유추를 해본다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길에서 운전자를 자임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할 수 있었던 핵심 키워드 또한 ‘미국의 이익’에 기반한 북핵의 활용(해결)에 있었을 것이라는,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려우나)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에 이른다. 한국의 안보정책은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관계를 전제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해 왔다. 여기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김대중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론’이었으며, 이를 계승한 노무현 참여 정부는 남 · 북한 및 동북아시아 공동의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였다. 북한과의 일면적인 대결국면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한의 개혁 · 개방정책으로 다면화되었다. 이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긍정적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구심으로 표면화되기도 하였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006년 10월 27일 프레스센터에서 행한 강연에서 “핵을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때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쓸지는 모르지만 핵으로 남한이나 미국을 협박하기에는 부족하며 북한의 핵은 협상용 카드에 불과하다"면서 "북핵문제를 푸는 데서 핵심은 미국이고 미국이 입장을 바꾸면 북핵문제는 바로 풀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지금은 북핵문제와 관련해 원인논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해법논쟁의 정책대결로 옮겨 건전한 해법을 찾는 것이 우리 민족의 활로를 여는 길이다”라며[각주:28], “미국의 진의가 말로는 한반도 비핵화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적당히 핵을 가지므로 해서 한국과 일본이 더 확실한 핵우산을 필요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각주:29]고 말했다 한다. 현실적으로 해결 가능한 유일한 해법은 '미국의 국익' 더하기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이다.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 핵이 (평화체제)한반도 차원에서 ‘잘 관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일 즉, 지역의 세력균형에 부합하도록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공동(평화적)으로 관리해감으로써 이 지역에서 미국이 희망하는 세계질서 재편전략에 부응토록 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다. 북쪽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꾸준하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온 편이기에 미국정부만 기존의 대결국면에서 평화체제 국면으로 전환해 준다면 북 · 미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의 불확실성 제거는 능히 실현 가능한 의제이다.


속전속결로 끝날 것 같았던 북 · 미 간 종전협정 및 평화협정 선언 작업이 근래에 들어 상당히 지리멸렬해 보이는 이유는 아직 북 · 미 상호 간에 완벽한 신뢰구축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북한과 미국정부 상호 간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생각처럼 쉽사리 풀리지 않으며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의 상호주의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것이 당연한 구조다. 셈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급할 것은 없다. 남는 것은 시간이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기에 그렇다. 시간이야 든다 한들, 대세는 변함이 없다.


단, 종전선언은 한반도의 전쟁 후 이어지고 있는 장기 간의 휴전 상황을 끝내는 그저 전쟁상황의 종결이라는 선언적 의미에만 그치지는 것이 아니다. 짧게는 동(북)아시아의 질서 재편, 넓게는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즉, 한 국가(한반도) 차원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지역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자, 더 나아가서는 패권국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사자 등에 올라 타느냐, 아니면 당나귀 등에 타느냐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된다.




  1. 이토 나리히코 지음, 강동완 옮김,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 2006, 행복한책읽기 [본문으로]
  2. 강동완, 「동아시아조약기구를 창설하라」, 『월간 말』 2005. 08, pp.80-81 [본문으로]
  3.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81026-00000132-jij-pol [본문으로]
  4.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10/25/0200000000AKR20181025136200009.HTML?input=1195m [본문으로]
  5. 서재정.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대북정책-다층적 복합적 상호의존과 그 대응」, 『내일을 여는 역사』49, 2012, pp.75-76 [본문으로]
  6. 북한의 핵실험 일지. 1차 핵실험: 2006년 10월 9일(위력: 1KT), 2차 핵실험: 2009년 5월 25일(위력: 3-4KT), 3차 핵실험: 2013년 2월 12일(위력: 6-7KT), 4차 핵실험: 2016년 1월 6일(위력: 6KT), 5차 핵실험: 2016년 9월 9일(위력: 10KT), 6차 핵실험: 2017년 9월 3일(위력: 50-100KT). 6차 핵실험과 관련해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의 성공적 실험이라 발표. [본문으로]
  7. 로버트 D. 블랙윌, 「미국의 핵정책과 새로운 핵보유국」, 『한울』, 1997 [본문으로]
  8. 이장욱,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획득 가능성 연구: 기존 사실상 핵보유국 사례를 토대로, 글로벌정치연구 제10권 2호, 2017, pp.41-49 [본문으로]
  9. 이상환, 「인도-파키스탄과 브라질-아르헨티나의 핵정책 비교연구: 핵무장 강행 및 포기 사례의 분석」, 『남아시아연구』, 10(2), 2005; 정성임, 노태훈, 박뿌리, 한정헌, 「핵협상과 북핵문제: 이란, 파키스탄, 인도 사례와의 비교」, 『통일연구』, 2015; 정영태, 「파키스탄-인도-북한의 핵정책」, 『통일연구원』, 2002; 이장욱, 같은 논문, pp.49-69 [본문으로]
  10. 손한별, 「1960년대 미국의 대중국 군사공격계획」, 『군사』제108호, 2018 [본문으로]
  11. 손한별, 같은 논문, pp.127 [본문으로]
  12. 미치광이 국가(madman state)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이성적 · 합리적인 [본문으로]
  13. 박한규, 「트럼프 신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향후 북미관계 전망: 한반도 안보에 대한 함의」, 『국방정책연구』,제32권 제4호, 2016, pp.12 [본문으로]
  14. 박한규, 같은 논문, 같은 곳 [본문으로]
  1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0717&fbclid=IwAR1hQ_iqZFODNSlPcFAwI1vtz-GzsJ_eAdzZ3omMT-llClPvtBSGlt_T8pQ [본문으로]
  16. 위 같은 기사 [본문으로]
  17. 서정건, 차태서,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외교의 잭슨주의 전환」, 『한국과 국제정치』제33권 제1호, 2017, pp.82 [본문으로]
  18. 리단, 전형권, 「중국의 대 남북한정책의 지속과 동학: 후진타오 이후 대 남북한관계를 중심으로」, 『정치 · 정보연구』 제13권, 2010, pp.102 [본문으로]
  19. https://www.voakorea.com/a/2994788.html [본문으로]
  20. https://www.voakorea.com/a/2968006.html [본문으로]
  21. 한국사회에서 좀 더 논의가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관련한 문제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북한 문제만 불거지면 중국 만능론을 설파하며 중국에 기대려는 심리가 팽팽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 문제와 관련한 제대로 된 논의는 아직 일천한 듯 싶다. 중국이 그렇게 의리와 용기를 가진 나라인지, 비록 작다고는 하나 일국의 국가 운명이 눈감고 도움주는 외부세력에 의해 지탱 가능한 것인지 이성과 합리성에 입각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문으로]
  22. 서재정, 같은 논문, pp.78 [본문으로]
  23. 「조선중앙통신」, 2009년 1월 13일 [본문으로]
  24. http://www.amn.kr/sub_read.html?uid=32693&fbclid=IwAR3Sh32ynAm9nWcN9d3YfM5dQz3TwvqrfE5uIlKLeqSpoGVDhMjQOdbJDxo [본문으로]
  25. 김동성 외, 「미국 도날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대응 방향」,『경기연구원』, 2017, pp.122-123 [본문으로]
  26. 핵무기도 운송수단을 수반할 때에만 비로소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리적 · 공간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본문으로]
  27. 정병호, 「북미간 주요 현안 관계를 통해서 본 북한의 대미정책 분석」, 『컬처 컨버전스』 제2권 제2호, 2011, pp.40 [본문으로]
  28.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9680, 2006. 10. 28 [본문으로]
  29. 연합뉴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451607, 2007. 10. 27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