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3. 12. 19. 17:56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개그맨, 고 김형곤씨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서 대한민국 사람들만큼 웃기기 힘든 관객도 없는 것 같다. 코미디 프로그램 보려고 오셨으면 웃을 준비들 좀 하시고 보셔야 하는데, 극장을 찾는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은 의자에 깊숙이 기대 앉아 팔짱을 낀 채로 무대를 응시한다. 그래 네가 얼마나 웃기는지 한번 보자고 벼르는 분들의 태도 같다. 배우들과 한판 뜨자는 자세다."

 

사실, 그 얘기 듣고 나부터 반성을 했다. 맞다. 극장을 찾는 이유가 뭔가? 즐기자는 것 아닌가? 웃길 땐 웃고, 감동을 주면 감동 받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마치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들처럼 행동해서야 제대로 즐겨지겠는가. 바람직한 관극태도 - 마음의 자세 - 란 그래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하는 걸음걸이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눈 위에 발 도장을 찍는다.

 

굵은 눈발이 하나 둘 흩뿌렸다. 서설(瑞雪)일까? 그렇다. 그럴 것이다. 그 분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내리는 눈이니 어찌 서설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분을 뵐 마음의 준비는 이제 끝났다. 꼿꼿하게 허리 곧추세우고 의자에 앉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혼자서, 그것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약속되어진 장소인 롯데시네마로 향했다. 영화 「변호인」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 영화 <변호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이미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부림사건 연루자들이 영화의 핵심 모티브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한창 기세를 떨치던 1981년 부산지역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이 터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세무변호사로 부러울 것 하나 없던 고졸출신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은 우연찮게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인권변호사라는 자신이 의도치 않았던 방향으로 인생이 바뀌어 간다. 세상에는 돈이나 목숨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말이다.

 

물론, 이를 자각하는 이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한다. 그러니 그런 일에 기꺼이 나서는 분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를 통틀어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라는 송우석 변호사의 대사를 들고 싶다. 이 말은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송우석 변호사의 항거이자 항변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채 척박하기만 한 오늘의 이 현실에 대한 답답함으로 내게는 비수가 되어 꽂혀왔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기에 더욱 아팠고 말이다.

 

이런 유의 영화를 보면서 내 맘이 편치 않은 것은 비단 내용이 슬퍼서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내가 센티멘털해서도 아니다. 잘 알면서도, 너무도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나약해 보여서 그렇다.

 

영화 2시간 10분은 길다. 특히, 일부 감독들은 친절이 너무 지나쳐 세세한 것 까지 다 설명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개연성에 너무 연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되면 관객은 짜증이 난다. 괜히 무시당한 것 같다는 피해의식 같은 게 들기도 하고 말이다. 함축과 생략(공백), 중요한 영화미학 중 하나이다.

 

그분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극장 문을 나서니 여전히 흰 눈발이 뿌려 대고 있었다. 전철로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걸었다. 볼에 닿는 겨울 바람이 몹시 찼다. 살아 있으라고, 깨어 있으라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내라는 말씀처럼도 느껴졌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안녕하시냐는 인사말이 유행이다. 도처에 "안녕들 하십니까" 하는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해 다들 안녕치 못하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저들은 예나 지금이나 저렇듯 권력과 무력을 앞세워 국민을 억눌러 댄다. 글쎄다.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려진 한 송이 장미꽃은 꺾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오고 있는 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자식들의 '안녕'한 미래를 위해 조금만 더 냉철해져 보자. 그리고 이렇게 되뇌어 보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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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