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4. 29. 23:25

청맹과니. 눈뜬장님이라고도 한다. 같은 말인 까막눈이 달리 까막눈이 아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국회의원이면 뭣하나. 사리분별을 못하고 사물을 제대로 분간을 못하니 그게 바로 까막눈인 거다.


국회가 난장판이다. 때 아닌 독재타도와 헌법수호 외침이 요란하다. 정작 독재의 시대에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일신의 영달만을 꿈꾸었던 이들이 호시절을 만나니 호기가 동했나 보다.


자신들의 관할권(어감은 나와바리가 좋다)인 국회를 나와 광화문에 설치한 장외투쟁 야외무대는, 언론이 전하는 영상들을 보니 마치 패션쇼의 한 장면인 것 같기도 하다. 보무도 당당히 무대 위를 가로질러 연설대로 향하는 이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그렇게 해서 타도될 독재라면 그건 독재도 아니다. 진짜로 독재타도를 외치던 이들은 항상 비장함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며, 한번 잡혀가면 치도곤이 나도록 얻어맞는 것은 물론이고 고문기술자의 현란한 손놀림에 초죽음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독재타도를 외치는 저들은 필경 믿고 있는 거다. "이 (독재)정권은 그런 비인간적 대접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잡아가지 조차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거다. 그러니 저리 호기롭기 그지없이 여유까지 부려가며 독재타도를 외칠 수 있음이다.


혼자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평생을 무사통과가 몸에 베인 사람들이라 그러하리라. 그러니 이 정도(선진화법 위반) 또한 무사통과하려니 하는, 무사통과라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보자.


국회법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개정 2018. 4. 17.>


제165조(국회 회의 방해 금지)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본회의,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의 각종 회의를 말하며,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를 포함한다. 이하 이 장에서 같다)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전문개정 2018. 4. 17.]


제166조(국회 회의 방해죄) ① 제165조를 위반하여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ㆍ감금, 협박, 주거침입ㆍ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65조를 위반하여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사람을 상해하거나, 폭행으로 상해에 이르게 하거나,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을 폭행 또는 재물을 손괴하거나,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그 밖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ㆍ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아, 만만치가 않다. 


설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협치를 위해 타협에 나서 없던 일로 한다해도 시민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선진화법은 '반의사 불벌죄', 즉 고소·고발을 취하한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 않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외통수 자충수다. 자유한국당의 인물교체(또는 보수체제 혁신)는 이렇듯 내부적 모순(사불범정邪不犯正[각주:1])에 의해 달성되려나 보다. 합리적 사고와 부국강병·우국충정의 뜻을 품은 건전한 보수들이 그들의 빈자리에 교체되었으면 한다.


며칠 째 이어지고 있는 저들의 폭거를 보면서 몇 가지 단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주류 교체기에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그 하나다. 특히, 보수정치세력의 주류교체가 한창이다. 황교안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는 보수정치 진영의 주류(주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가 아니다. 문제는 주류가 아닌 그들이 주류행세를 하고 있고 또 하려고 하는 데 있다. 그건 이전 홍준표 체제부터의 딜레마이자 자유한국당 망조의 시작이었다.


비주류는 비주류다워야 한다. 주류의 시대정신과 비주류의 시대정신은 결코 같지 않다. 그런데 그런 비주류가 당권을 잡자마자 마치 주류처럼 말하고 행세하려 하니, 양복에 삿갓 쓴 꼴이 된 것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주류 박근혜계가 갖고 있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왜 눈에 아른거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탐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그 정도 지지층으로 계파 하나는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주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주류 박근혜계는 하면된다식의 ‘새마을 정신’과 반공에 기반을 둔 ‘분단체제’형 정치이념 집단이다. 한마디로 전근대적 사고의 전형적인 예다. 하루가 달리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보수의 비주류 그룹이다.


또 하나는 보스(중진)정치의 실종이다. 주군의 감옥행은 자연스레 보스의 연대책임론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중진들은 한껏 몸을 낮추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당을 추스르거나 전략적으로 움직이어야 할 인물이 부재하다. 그러니 다들 각개격파 돌진만을 거듭한다.


이번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한 싸움에서 선진화법 위반에 걸린 게 그 한 증거다. 당의 지도부라는 곳에서도 싸움의 전략·전술은 고지하지 않는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패스트트랙 저지만을 외친다. 그러니 의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싸움에 나선다. 축구선수 11명 전원이 심판의 호각소리와 동시에 다들 한 골 넣어보겠다고 공격수로만 뛰어나간 격이다. 골키퍼도 없다. 감독·코치도 없다. 이게 현재 자유한국당이 처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던지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20대 국회가 개원 중이다. 이 말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20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한민국 국회는 국내의 제세력 집단들 중 가장 신뢰도가 떨어지는 집단, 심하게는 ‘국개의원‘이란 비아냥거림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한두 번도 아니고 스무 번씩이나 한 선택의 결과가 이렇듯 처참하게 된 원인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1)국회의원들의 자질 문제다? 

2)유권자들의 선택의 무능 탓이다? 

3)대의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한계 때문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여기저기서 정치의 위기를 말한다. 정치혐오 또한 횡행한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체제다. 아니, 어쩌면 행정·입법·사법에 더해 언론(재벌)까지를 포함한 4권분립의 사회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 4권 중에 유일하게 유권자(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입법부 즉, 국회다. 행정부는 대통령은 선출직이나 이하 모든 공무원들은 비선출직이다.


4권분립을 크게 보면,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을 권력 간 경쟁과 견제 관계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게 선출된 권력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정치혐오·정치위기를 조장한다. 그래야 자신들을 향한 권력 견제에 누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혐오이거나 위기로 하자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도 만만치 않다. 적폐의 한 가운데에 그들이 있다.


그래서다. 정치혐오나 정치위기를 조장하는 자들(세력)을 경계해야 한다. 누가 뭐라해도 인민(국민)의 힘은 소중한 한 표에 의해 행사된다. 그러려면 나의 한 표에 의해 뽑힌 그 ‘대표(대리자)’에게 내가 던진 한 표의 그 힘과 권한이 오롯이 실려야 한다.


정치위기를 극복하고 살맛나는 정치로 만드는 방법? 어렵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잘 뽑으면 된다. 항상 내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갖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 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면, 그 나라 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1년 뒤면은 21번째 선택의 순간이 온다. 제발이다, 잘 선택하자!


  1. 바르지 못한 것은 바른 것을 감(敢)히 범(犯)하지 못한다는 뜻으로,정의(正義)는 반드시 이긴다는 말, 네이버사전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