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5. 3. 01:18

오늘자 일본 아사히신문 등 복수의 언론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베(安倍晋三)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조건을 달지 않고 응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국교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 국교정상화는 없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대폭 선회한 것이다.


일본 국민들 일부는 혐한론으로 발광 중이고,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와의 갈등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이다. 즉, 시민레벨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눈엣가시다.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한국정부의 과거사 관련 압박이 영 떨떠름하다.


긴말 필요 없다. 그만큼 일본 사회가 위기의식으로 팽배해 있다는 증거다. 위기로 치자면, 일본 국민들과 일본정부(아베 내각)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다. 근자들어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크고 위중하다.


일본을 상징하던 두 개의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이게 ‘격차사회’로 바뀌고 말았다. 다른 하나는 ‘안전사회 일본’이라는 신화적 믿음이었는데, 이 또한 ‘동요하는 일본’으로 주저앉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여파, 그리고 2011년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했던 대지진의 충격이 몰고 온 일본사회의 혼란상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민레벨에서의 혐한론과 일본정부(우익세력)의 한국때리기에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다고 본다. 내부의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외재화 작업의 도구라는 말이다.


아베(일본 보수우익 세력) 총리에게는 두 가지 역사적 현안이 있다. 하나는 개헌을 통한 보통국가화(전쟁이 가능한 나라 만들기), 다른 하나는 북·일국교 정상화다. 그런데 그런 아베 총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아베 총리가 2021년까지 3번째 임기는 보장받았으나, 일본 총리는 3연임 이상을 못한다. 이 말은 2021년 9월이 지나면,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총리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3연임 하는 순간 바로 레임덕이다. 아마도 올 7월의 참의원 선거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러니, 급하다.


개헌은 물 건너갔다. 자신의 임기 내에는 절대 불가능하다. 아베 정부는 2020년을 헌법 개헌의 해로 정해 놓고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올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88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총 242석 참의원 의석 중에 이번 선거에서는 절반의 의원이 바뀌게 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개헌 국회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참고로 현재 자민당 참의원 의석수는 122석, 우호세력인 공명당이 25석, 총 147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 남은 게 북한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앞서 봤던 참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기획적 차원 즉, 참의원 선거와 납치자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보겠다는 일타쌍피식의 꼼수적 접근을 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크다. 과거사 정리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일조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공생·공영을 위해 기여함을 목표로 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풀어갈 일이다. 


어쨌든, 아베 총리는 일찍부터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많은 물밑 작업들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5월 내각 관방자문역으로 있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를 평양에 특사자격으로 보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은 두 달 뒤의 일이다. 이지마씨는 2002년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 시에 총리 비서관으로 평양에 동행했던 인물이다. 그는 북한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만났다.


2015년 5월에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간 회담에서 양국은 국교정상화를 추진한다는 합의를 발표하였다.


작년 6월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지난 2월의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일본 정부는 끊임없이 북한과의 회담 의지를 보여 왔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작년 9월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을 위한 도움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선심성 발언을 했으며, 올 1월 일본 의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갔다.


앞선 정부에서 했던 북·일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들과 그 실패의 역사도 있다. 1990년,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와 다나베 마코토(田邊誠) 사회당 부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3당(자민당, 사회당, 조선노동당) 공동선언을 통해 수교 교섭을 맺었다가 돌연 연기되면서 지지부진해졌던 과거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시에는 방북단의 일원(부 관방장관 신분)으로 방북했던 경험도 있다. 이 회담 역시 ‘납치자 문제’에 발목이 잡혀 이후 20여년을 별다른 성과 없이 갈등관계만 노정하고 있다.


2015년을 전후로 해서, 특히 2017년 여름쯤에는 아베 총리의 방북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앞서 거론했던 이지마씨가 한 주간지에 게재한 글을 통해 아베총리의 방북을 강력히 권고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납치자 문제는 이제 일본 국내에서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로 변화했다. 일본 내 이해세력의 관계 등이 너무 복잡해져서 그렇다. 쉽지 않은 문제다. 물론, 그걸 이용해서 오늘의 아베 총리는 만들어졌다. 무명이자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던 아베 신조가 총리 자리를 꿰어차고, 오늘날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게 바로 납치자 문제(북한 문제)의 적절한 이(악)용이었다. 자업자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인이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


그동안 미국은 대북압박을 위해 중국을 적극 이용하려 했다. 현재 양국 간 첨예한 현안이 되어있는 미·중 무역전쟁 역시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에게 기대하고 있는 대북압박 방식은 중국 대륙을 통한 밀무역의 통제다. 촘촘한 해상봉쇄의 허점이 그곳에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순탄치가 않다.


미 의회는 2016년 2월 대북제제법(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규정을 도입하여 대북제제를 한층 강화했다. 이 모든 걸 무릅쓰고 거침없는 한 걸음을 내디딘 이후, 북·미관계는 답보상태다.


지금 미·일은 무역협상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정부에 자신의 지지층인 농업분야의 관세요구는 주장하고 있으면서, 일본이 원하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 문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한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아베 총리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타개책이 절실하다.


지난달 말, 미·일 정상은 워싱턴에서 1박2일 회담을 하며 우의를 과시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다. 그리고 일주일여가 지난 오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온 아베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조건 없는 만남을 제의했다.


일본정부의 대북경협 자금(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겠다. 대략 300억 달러(34조원 가량) 정도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인 듯하다. 일본정부의 한 해 예산을 감안해 볼 때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는 얘기도 있다.


드디어 전주가 떴다. 이제 모든 패가 다 테이블 위로 오른 셈이다. 상념이 깊어지는 밤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