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7. 18. 17:36

최근, 일본 아베정부의 한국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경제문제에 이어 안보문제에까지 말 트집을 잡으며 되도 않는 억지 논리로 전선을 확대해 가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국내외 전문가들도 각양각색의 의견들을 내 놓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이다, 한국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싶어한다는 설에서부터, 한국에 친일정부를 세우려는 목적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나는 단기적으로는, 오는 21일 있을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일본 국내정치용 정치쇼라고 본다. 길게는, 변화하는 세계정세로 인한 초조함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의 확대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져다 준 불안감이다.


물론, 아베의 정치쇼는 변수(variable)다. 상수(constant)는 후술했던 세계정세의 격변이다. 이것이 일본 보수우익세력으로 하여금 치졸한 정치쇼의 상대로 우리나라를 끌어들이게 한 이유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베 정부가 우리 문재인 정부를 때리자 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싸움에 합세하는 세력들이 있다. 우리나라 보수언론, 보수야당, 일부 재벌들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심정으로 쾌재를 불렀으리라. 그래서 이 싸움의 구도가 아베정부와 한국의 토착왜구세력들의 연합 대 문재인 정부와 일본의 양심적 민주시민세력 간 대립으로 양분되었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초반의 조심스런 대응에서 강경대응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분히 불순한 의도를 가진 내·외부 연합세력에 의한 심대한 도전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 세력들은 한반도 평화체제에도 반대를 하며 딴죽을 걸고 있는 호전적 세력들이다. 


크게 본다면 동아시아 평화세력과 전쟁세력 간의 한 판 싸움이다. 경제침탈로 불붙은 싸움이, 한·일 양국 정권의 향배와 역내 지역패권(헤게모니)을 놓고 벌이는 일대 격전 즉, 밀리면 죽는 전쟁으로 확전된 것이다.


아마도, 북·미관계 개선 이전의 상황이었다면 저들은 '한국때리기' 대신에 '북한때리기' 수법을 썼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재미도 톡톡히 봤다. 


오늘날의 아베총리는 북한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가족들을 이용한,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북한때리기가 유효했기에 현재의 아베도 있다. 지금은 북한(김정은 위원장)이 미국(트럼프 대통령)과 밀월 중이니 감히 손 대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참 간사하다.


2+1체제


1945년 이후, 일본사회를 관통하는 두 체제가 있다. 하나는 평화헌법체제이다, 다른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체제이다. 이는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판문점체제와 연동된다. 이를 2+1체제라 부르고자 한다. 일본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평화헌법체제는 내재적 체제이다. 즉, 일본 스스로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체제라는 말이다. 물론, 이론은 있다. 일본사회 개헌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주헌법’으로의 개헌론이 있다. 미국(맥아더 사령부)의 강압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이니 이를 일본국민의 뜻에 맞게 자주적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기에 평화헌법체제를 일본의 내재적 체제로 간주한다.


반면에 샌프란시스코체제는 외재적 체제이다. 소련에 대한 적대감에 더해 중국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전쟁의 발발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변화로 이어졌다. 전쟁에 대한 모든 과오를 덮어준 채 미국의 충실한 우방국화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자의에 의해 전쟁피해국과 책임 및 보상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미국의 힘에 의해 강제된, 이것이야말로 강압적 조치의 대표적 예다. 일본이 제정신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다면, 평화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조약을 근본에서부터 뜯어고치고자 하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일본이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평화헌법체제는 일본사회에서 면면히 흐르는 평화의 정신이다. 전쟁에 대한 반성, 주변국에 심대한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사죄, 그리고 다시는 그와 같은 전쟁으로 자국을 황폐화시키지 않을 것이며 주변국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겠다는 자국민과 주변국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체제로 인해 전후처리에서 실패함으로 해서 전쟁을 획책했던 전범들이 그대로 일본사회로 생환하게 된다. 이때 이미 역사 역주행의 씨앗은 뿌려져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들과 그 후손들은 일본사회의 선량한 시민들의 뜻에 역행하여 전전의 제국주의 일본으로의 회귀를 호시탐탐 노리게 된다.


이와 같이 역사의 하중에 눌려있던 일본사회가 본격적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자와 이치로(小沢 一郎)의 ‘보통국가론’을 통해서다. 90년대 초반 오자와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이후 고이즈미(小泉 純一郎)와 아소(麻生 太郎), 아베(安倍 晋三) 총리를 거치면서 일본의 국가전략으로 수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일본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은 9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일본사회에 위험 징후가 농후해진 이후다. 격차(格差)사회. 개인 간, 계층 간 격차가 심화된 것이다. 즉,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되면서 일본사회는 신보수주의로의 전환을 도모한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 시절 신자유주의의 정점에 섰던 일본사회가 붕괴의 조짐을 보이자 나타난 변화이다.


격차사회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일본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가지지 못한 자도 살만한 국가화’라는 사실이다.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사회의 중·하층 계층들이 살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불만을 가지지 않을) '저렴한 사회 편의(?)형' 국가로의 탈바꿈이다. 즉, 확실한 계층사회다.


1. 유니클로. 일본 아베정부의 경제침탈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자연히 일본제품과 관련한 관심도 높다. 그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게 의류제품 ‘유니클로’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수입해 팔다보니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지도가 있는 제품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인터넷을 달군 읽을거리 중에 하나가 ‘유니바레’라는 일본의 신조어 관련 글이었다. 유니바레에서 유니는 유니클로의 앞 두 자, 바레는 일본어 바레루(들키다)의 앞 두 자를 합성해 만든 단어라고 한다. 즉, 유니클로 브랜드 옷 입은 것을 들켰다라는 말이란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발행되는 잡지의 기사 중에는 ‘유니클로 옷을 유니클로 같지 않게 입는 법’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글쎄, 다소 과장되었을 수도 있으나 내가 공감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일본에서 유니클로는 그렇게 고급스러운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차라리 저가 브랜드의 대명사라고 봐야 한다.


애초에 시작을 1천엔(1만원)짜리로 했기에 그렇다. 그러다가 차츰 2천엔짜리, 5천엔짜리, 후에는 7~8천엔짜리 오리털점퍼도 만들고 했다. 그게 지금의 유니클로의 역사다.


일본에서는 유니클로의 주된 고객층이 젊은 학생들, 또는 가격 저렴한 물건을 찾는 이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지하철 안에서 많이 목격되던 약간 빈티지스런 젊은층의 패션스타일 같은 거다. 지금은 워낙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고, 나름 품질면에서도 인정받는 몇몇 제품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나도 유니클로의 히트텍과 에어리즘 내의는 몇 벌 가지고 있다.


2. 남성 헤어컷 전문점. 먹는 것 입는 것 못지않게 주기적으로 해줘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머리 깎는 일이다. 특히나 나처럼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길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깎아줘야 한다. 이상적인 것은 2~3주에 한 번 이·미용실에 들리는 일이다.


그런데 일본은 남자들 이발요금이 꽤나 비싸다. 오죽하면 일본에 있는 한국인 교회에서 매주 일요일에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서비스를 하겠는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무심코 동네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가 벽에 걸린 요금표를 보고 후회막심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 기억에 커트 요금이 3천엔(3만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찾아낸 곳이 남성 헤어컷 전문점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보통 7천원 정도 하는데 나도 이곳 고객이다. 머리만 깎아주고 감는 것은 본인이 알아서 감으면 된다. 일본에서는 1천엔(1만원)이었다. 자동판매기에 1천엔을 넣고 영수증을 뽑아 이발사에게 주면 된다. 머리 감는 시설은 없다. 그저 깎아주기만 할 뿐이다.


3. 규동(牛丼). 우리에게 김밥집이 있다면 일본에는 규동집이 있다. 소고기덮밥집이다. 물론, 소고기덮밥 외에도 다양한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기는 하다.


지금은 규동 가격도 좀 올라서 3~4백엔(3~4천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일본에서 보통 한 끼 식사가 800~1000엔 정도 하는 것에 비하면 많이 저렴한 먹을거리다. 요즘은 우리 김밥도 한 줄에 3~4천원씩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 규동 가격은 정말 저렴한 것이다.


4. 중저가 백화점. 이세탄, 미츠코시, 세이부, 도부, 타카시마야 등이 일본을 대표하며, 고급제품을 취급하는 백화점들이다. 이들은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주요 전철역 근처나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이들에 비해 급이 조금 떨어지는 소형백화점들이 동네 주변에 하나씩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식품관부터 의류관까지 갖추고 있는데 취급하는 물건들은 고급백화점보다 다소(혹은 많이) 저렴한 제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통 우리의 이마트나 홈플러스를 연상할 수 있는데, 이와는 또 좀 다르다. 백화점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분위기도 약간은 더 고급스럽다. 우리의 이마트나 홈플러스와 같은 기능은 ‘올림피크’라고 창고매장형 판매점이 따로 있다.


5. 자전거의 대중화.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일본이다.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경우 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 일본인들은 자전거로 이동한다. 당연히 자전거 등록제 사회다.


판문점체제란 한반도에 형성된 냉전의 유물들, 아시아 패러독스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한국전쟁 군사 정전 체제를, 하나의 특수한 평화체제 지칭할 것이라고 김학재는 주장한다.[각주:1]


아시아 패러독스란, 경제적으로 엄청난 규모와 밀도로 협력하고 교환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에 걸맞은, 지역 차원에서 협력하고 공동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제도와 기구 없이 마치 유럽의 19세기 민족국가들처럼 서로 경쟁하고 전쟁과 군사적 충돌의 위협을 감수하고 있는 모순적 현상을 겨냥한 것이다.[각주:2]


이 판문점체제는 한반도 남과 북의 대결이라는 냉전적 의미 외에도 한·미·일 군사동맹 하의 동아시아 패권정책,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사회주의권과 지역 국가들과의 역내 관계를 설명해 주는 유효한 이론 틀이다.


게다가 일본이 판문점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던 평화헌번체제와 연동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하여 보통군사국가화 하려는 일본 보수우익세력의 도발적 야심과 직결되는 문제로 판문점체제는 그들의 악용하기 좋은 먹잇감 같은 것이었다. 북한때리기로 대변되는, 북한위협론의 확산을 통한 민족주의적 사회통합 의도가 그 하나다.


신자유주의에서 신보수주의로


세계 대공황의 해결을 위해 케인즈의 이론이 각광을 받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게 세계를 휩쓸면서 평등에서 불평등으로의 급속한 이행을 초래했다. 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사상이다. 즉, 자각하는 주체적 인간인 개인이 그러한 주체적 인간들과의 평등한 연대를 맺음을 지향한다. 자연히 소통과 관용은 필수적 덕목이 된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규제를 가능한 최소화하며 자유 경쟁을 중시한다. 자유주의의 정신에서 평등을 사상시켜버리고 능력을 대입한다. 능력만큼의 뒤에 자연스레 불평등이 따르리라는 것은 지극히 자명한 이치다. 또한 민영화의 논리에 밀려 그동안 일본사회를 지탱해 오던 파벌적 정치형태를 바꾸어 놓는다. 55년 체제 이후 일본 정치의 특징은 ‘이익유도형 정치’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익유도형 정치’라는 용어는 정치학자 오타케 히데오(大嶽秀夫, 1999:41-56)가 마스미 준노스케(升味準之輔, 1969)의 조어인 ‘1955년 정치체제’를 ‘이익정치·금권정치’라는 독특한 구조를 이해하고자 사용한 데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유도형 정치 체제의 대표적 특징으로는 ⅰ) 집중화(중앙지방), ⅱ) 대중화(이익관심의 고양), ⅲ) 이익화(국회의원과 계열화된 지방위원의 상호의존・이해), ⅳ) 상징화(매스 미디어에 의한 이미지전략), ⅴ)조직화(이익단체에 의한 집표, 이익단체의 기능)가 지적되곤 한다.[각주:3]


이는 정치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기본원리이기도 했고,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다양한 이익을 국민들(유권자)에게 제공하는 유착관계의 전형과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금이 가게 되자 새로운 지지기반 확보에 나서게 된다.


이 빈 공간을 파고든 것이 신보수의적 이데올로기다. 민족주의, 애국심, 도덕심, 역사부정 또는 미화,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안보위협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도 상수는 주변국과의 ‘갈등’을 조장하여 안보위협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민족주의에 빠져들게 하고, 애국심을 고취토록 하며, 도덕적 인간이 되도록 한다.


학교교육과 언론, 헤게모니집단에 의한 고도의 심리전 형태로 진행된다. 역사교과서 왜곡, 북한에 의한 납치자문제, 북한위협론 등이 대표적이다. 판문점 체제를 악용한 이데올로기 공세였다. 즉, 일본 국내적으로는 ‘갈등정치’, 외적으로는 ‘갈등외교’라 부를 수 있다. 이익유도형(거래) 정치에서 대중(이데올로기) 정치로의 전환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유화적 북한정책이 납치자문제에 발목이 잡히게 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판문점체제의 종말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을 한다. 북·미관계에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사회를 지탱시켜 주었던 또 하나의 축인 판문점체제가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 판문점체제의 종말은 단순히 일본사회 이데올로기의 효력 정지만을 뜻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의미가 있다. 일본에게 있어 1971년 미·중정상회담은 '닉슨 쇼크'였다. 2018년 6월의 제1차 북·미정상회담은 '트럼프 쇼크'다.


판문점체제의 종말은 한반도 평화체제로 현실화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탈냉전 이후의 신냉전 하에서 기획되고 추진 중에 있다. 이전의 냉전이 유럽지역을 기반으로 미·소 간 갈등구조였다면, 신냉전은 동아시아를 무대로 한 미·중 간 대결국면이다.


북·미관계가 한때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판문점 깜짝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며 진행 중에 있다. 미국의 언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북한 핵의 완전한 ‘비핵화’에서 ‘핵동결’로 의제가 옮겨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핵확산금지(NPT)에 관한 처신을 보면, 신규핵보유국이 핵을 개발하려고 하던 초기단계에서는 온갖 압력 및 선제타격론 등으로 위협하다가 핵을 완성한 단계에 이르면 급히 전략을 변경해 그 국가의 신규 핵을 자국(미국)이익에 최대한 부합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스라엘, 인도, 중국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리비아는 핵 개발 초기단계에서 눌러버린 예이다.


이러한 전례를 통해 본다면, 미국은 현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에서 한 발 물러서 핵동결로 옮겨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럴 경우, 북핵을 미국의 국익에 철저히 부합토록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아마도, 이제까지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이유도 비핵화 의제보다 이 문제에서 상호 신뢰 확보(적에서 동맹으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타협점을 찾았고, 협상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개인적으로 평화체제 한반도와 한(반도)·미동맹의 유효함에 대한 상호동의였을 것으로 본다. 이는 앞서 거론했던, 신냉전이 몰고 온 동아시아에서의 지역패권 문제와 직결된다. 중국을 견제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하며, 동아시아에서 중국 단독 패권이 작용하지 않도록 힘을 안배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은 단연 일본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비민주주의국가들(중국, 러시아, 북한)과 근접한 곳에서 자유주의국가들 최후의 보루 같은 역할을 미·일동맹 하에 추진해 왔다.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전하게 구축된 이후에도 이제까지의 굳건했던 미·일동맹이 그대로 유지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팽'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초조함이 지금 일본의 보수우익세력들에게서 진하게 묻어난다. 그래서 역사가 더 진전되기 전에 자신들(보수우익세력)이 추구했던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 일본' 즉, 전후체제 탈각을 완성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베로 하여금 경제침탈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만든 배경이다.



  1. 김학재, 『판문점체제의 기원』, 후마니타스, 2015, 23쪽 [본문으로]
  2. Robert A. Manning. "The Asian Paradox: Toward a New achitecture.: World Policy Jounal vol.10 no.3(1993). (김학재의 위의 책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김은혜, 『전후 일본 발전국가의 구조전환 - 토건국가에서 신자유주의까지-』, 일본학보 제105권, 2015, 4쪽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