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7. 6. 22:48

인도는 50도, 알레스카는 30도, 우리나라도 어제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지구촌이 펄펄 끓는다고 합니다. 그나마 우리나라 올 여름은 이제까지는 그래도 살만한 여름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라도 불어주어서 한낮 더위를 식힐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제부터가 걱정이지요.


한여름 폭염만큼이나 국민적 분노가 쌓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입니다. 정치가 그 중심에 있는 곳입니다. 신뢰도 꼴찌, 희화화의 주 대상이 됩니다. 정치인들 때문에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정치,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말입니다. 이처럼 정치가 흔들릴 때 덕을 보는 이들은 누구이고, 손해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냉정하게 살펴볼 때입니다.


오늘날, 정치(의회)는 온갖 권력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권력집단 중에 선출되는 유일한 권력이 의회권력입니다. 그러다보니, 선출되지 않는 권력들과는 항상 어느 정도의 긴장관계를 유지합니다.


정치(의회)권력이 살아있으면, 여타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주눅 들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치권력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은 항상 선출된 권력 즉, 정치를 국민들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안달을 합니다.


바로 이게 ‘정치혐오 부추기기’입니다. 그나마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인의 힘이 워낙 막강하여 여타 권력이 대놓고 덤벼들지를 못했으나, 탈권위주의 시대인 지금은 정치인이라고 함부로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치인에게는 검찰이나 경찰 또는 공무원들에게 있는 ‘폭력’의 국가권력이나, 하물며 ‘인·허가’권한 하나 조차도 없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권위주의가 정치인의 최고의 무기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너지고 나면 남는 것은 껍데기뿐인 ‘민의의 대변자’입니다. 이거, 국민들 입장에서는 매우 통탄해야 할 일입니다. 민의가 전달되는 통로로서의 기능이 마비되는 것임과 동시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부터 민의가 지배당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지배체제가 공고화되고 나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경우 아래에서도, 권력을 제어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은 국민들의 몫이어야 합니다. 행정권력으로부터, 사법권력으로부터, 검찰권력으로부터, 경찰권력으로부터 국민이 당당히 주인으로 서기 위해서는 민의 전달의 통로는 항상 이런 권력보다 위에 있어야 합니다. 견제와 감시와 심사 기능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제가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정치(인)들을 두둔하자는 게 아닙니다. 해방 이후 70여년을 지탱해온 현재의 의회민주주의는 별 탈 없는가? 탈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의회와 민회 그리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현재의 의회기능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를 쪼개서 둘로 나누자는 겁니다. 하나는 현재와 같은 입법기능으로서의 ‘의회’이고, 다른 하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기능으로서의 ‘민회’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선출방법도 달리해서 의회 의원은 전원 정당명부제에 의한 비례대표식 선출방식으로 하여 지역에 연연하지 않고 본연의 입법기능에만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민회는 중앙민회와 지방민회로 양분합니다. 민회의 주요 기능은 앞서도 잠시 거론했던 바와 같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관료)에 대한 감시와 견제, 그리고 업무 및 승진에 관한 심사를 담당합니다. 물론, 이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중앙민회는 관료사회 즉, 사법부와 경찰, 검찰, 행정부의 공직자, 국립대학 교원들, 그리고 여기에 지방정부를 포함하는데 이는 지방민회와의 역할 분담으로 그 업무를 조정합니다.


민회의 선출방식 및 역할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여기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고, 문제제기의 성격만을 갖는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전사회학자 막스베버(Max Weber) 역시 관료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이론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권위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합리적 지배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관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국가의 역할은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중앙집권적 통치방식에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내는 것은 관료들의 역할이었습니다. 베버는 이처럼 막중한 관료제의 기능에서 문제점도 발견하게 되는데요. 관료로 대변되는 행정과, 민의로 대변되는 정치의 충돌 가능성이 그 하나입니다. 즉, 관료들의 정치에 대한 저항인 셈이지요. 다른 하나는 관료들의 조직이기주의입니다. 자신들의 업무 우선에 앞서 조직의 안위를 챙기는 문제 같은 것입니다.


관료제가 국가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자 합리성 차원에서 최적의 구조라고 한다면, 이어지는 과제는 이를 어떻게 관리·감독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관료들만의 영역으로 놔두어서는 앞서 베버가 지적했던 두 가지 문제가 지속적으로 그 사회를 좀 먹게 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 ‘민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정치학자 레이프하트(Arend Liphart)는 그의 최근 저서 『민주주의의 유형』에서 한국의 정치형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전제를 들어 아래와 같이 주장하는 것인데요. 하나는 “한국은 큰 국가”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레이프하트가 분석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 36개 국가[각주:1] 중에 한국은 8번째로 큰 국가라는 겁니다. 통일까지를 전제로 했을 때의 한반도는 더욱 큰 국가가 됩니다. 다른 이유 하나는 “수십 년간의 분단으로 인한 이질성을 염두에 두었을 때 통일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일한국에서도 조정해야 할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한국이 연방제 및 분권화된 체제(federal and decentralized system)를 지향하고 양원제 입법부(bicameral legislature)를 채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레이프하트가 양원제를 추천하는 이유는 다수결주의(majoritarian)가 아니라 합의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정부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참고로 대의민주주의에 있어, 다수결주의와 합의주의의 대조는 다음과 같은 예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민이 선호에 대해 합의하지 않고 선호가 분산될 때, 통치자는 누구이며, 정부는 누구의 이익에 반응해야 하는가? 이 딜레마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인민의 다수(the majority of the people)"라는 것이다. 이 대답은 민주주의의 다수결 모델의 본질이다. 【중략】 이 딜레마에 대해 다수결주의 모델의 대안이 되는 대답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as many as possible)"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합의모델의 요점이다.[각주:2]


제가 주장하는 의회와 민회가, 양원제의 상원과 하원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레이프하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고민의 지점이 비슷하다는 말씀으로 의견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선출된 권력이 문제라고 떠들어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문제점 또한 국민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자칫 이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정치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순간, 민의는 장기판의 졸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의 정치행태의 꼴이 말이 아니라면, 정치인으로 선택된 자의 무능과 자질 못지않게 정치인을 선택한 유권자의 잘못도 작지 않습니다.


다소 논쟁적이기도 하고 많은 지면을 필요로 하는 주장이기는 하나, 장황한 서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단적으로 말한다면 저는 관료주의가 정치를 침해하는 좋은 사례로 일본이라는 국가를 들고 싶습니다.


전형적인 엘리트지배모델이 적용되는 것이 일본의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특히나 관료사회의 막강한 사회견인력은 일본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꽤나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러나 그 와중에 민의는 사라지고, 정치는 실종되었으며, 자민당 1당 독재체제의 닫힌사회화 되어버렸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억누르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서 다 같지도 않습니다. 관료 또는 이익집단과 줄을 대고 있는 정치인들의 성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족의원(員)이라 부릅니다.


'족의원'이란 특정 행정분야에 정통하고 관계 관청, 관료, 관련업계나 단체의 조직적 이익과도 깊이 결합되어 있으며, 특정 분야의 정책 형성·결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민당 의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들 집단을 '족'이라고 한다. 정무조사회가 정책결정 과정상 중요 기관으로 자리잡은 것은 일본의 법안 심사제도와 관계가 있다. 내각 책임제 국가인 일본은 내각제출 법안의 경우, 여당인 자민당의 승인을 받은 안건만 국회에 상정할 수 있어 자민당 내에서 정책을 심의·결정하는 핵심기관인 정무조사회의 심의 통과는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이다. 따라서 정무조사회 부회(의회 위원회의 역할: 필자주)에서 정책의 심사·결정을 담당하는 '족의원'이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각주:3]


'족의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국회의원 당선회수와 그에 따른 '연공서열주의'에 입각한 여러 직위의 경험, 직위를 수행하면서 행하는 정무조사회에서의 활동이라는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각주:4]


지금 드러나고 있는 아베정부에 의한 경제보복 역시 그 한 현상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정부(관료사회)는 갈등과 분쟁의 전근대적 전략(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팬패싱이 의미하는 바를 직시해야 합니다. 일본이 살려면 정치가 살아야 합니다. 권력을 경직된 관료사회로부터 민의가 살아 숨쉬는 정치로 옮겨 와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순순히 내줄 저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갖고 있는 권력의 크기는 동서양과 시대를 초월합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1925년에 이렇게 글로 썼습니다.


영국에서 오늘날 재능 있고 도덕적인 젊은이는 사회로 진출할 때 공무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상업 쪽에서 돈을 추구할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을 한다.[각주:5]


공무원, 관료, 선출되지 않은 권력. 예나 지금이나 좋은(꼭 필요한) 직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고여있는 물을 흐르게 하여 부패를 방지하고 국민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안락한 사회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입니다. 국민(민주시민)들이 외면해야 할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정치혐오' 입니다.



  1.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기에, 보츠와나, 캐나다, 코스타리카,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란드, 인도, 아일랜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자메이카, 일본, 한국, 룩셈부르크, 몰타, 모리셔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포르투칼,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트리니다드, 영국, 우르과이, 미국 [본문으로]
  2. 아렌드 레이프하트, 『민주주의의 유형』,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7, 31~32쪽 [본문으로]
  3. 송형경, 「일본의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연구-족의원의 역할을 중심으로-」, 2000, 이화여대 석사 논문, ⅲ쪽 [본문으로]
  4. 송형경, 「일본의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연구-족의원의 역할을 중심으로-」, 2000, 이화여대 석사 논문, ⅳ쪽 [본문으로]
  5. 존 메이너드 케인스, 『설득의 에세이』, 부글, 2017, 197쪽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