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10. 6. 18:11

2016년 추운 겨울, 우리는 광화문 아스팔트 위 차가운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차게 몰아쳐 오는 북풍한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매주 19번의 토요일 저녁을 선출된 권력(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시린 손으로 촛불을 움켜쥐었. 하루 최대 170만 명, 연인원 천만 명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평화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권력(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해방 이후 70여 년, 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정치권력(선출된 권력)을 어떻게 선출하고, 이들을 어떻게 견제 · 감시할 것이냐에 모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점은 3년 전 대통령 탄핵으로 나타났다. '선출된 권력'의 제1막이 끝남을 의미한다. 내년에 치러질 21대 총선은 '선출된 권력'의 제2막의 시작을 예고한다. 아마도 여러면에서 이전과 많이 다른 대의민주주의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9년 가을,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서초동 일대를 밝히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조국 법무부장관 지지이자, 검찰개혁 관철이다. 이를 좀 더 거시적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의 표출이다.


권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치권력으로 불리는 선출된 권력이 하나요, 사법(판사), 검찰, 행정(고위공직자), 교육(대학교수), 경제(재벌), 언론권력이라 불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다른 하나다. 국민의 직접적 선택으로 뽑히는 선출된 권력과 다르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대부분이 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인사권 및 재정운용권 등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직접적 견제 · 감시 기능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들은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만의 집단적 권력화를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조직에 충성한다는 게 그런 의미다. 하지만 이들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촛불을 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직에 충성하는 저들에게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라고 명령하고, 충성서약을 받고 있는 과정이 작금의 촛불의 의미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에게 자기집단 권력화를 해체하라는 국민의 지시를 직접 전달하는 과정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고유권한이다. 그 고유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치열한 정치경쟁을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또 재창출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사권은 대통령 선출에 한 표를 던진 다수 국민의 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야당과 무언의 협잡을 통해 극렬거부하려 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저항행위는 인사권자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자 국민을 개 · 돼지 취급하는 처사다.

 

그래서다. 거대한 민주시민들의 촛불행렬이 서초동을 밝히고 있는 이유가 말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국민들의 견제 · 감시하에 두기 위해 민주시민들이 떨쳐 일어난 것이다. 이를 그저 정치적으로만 해석하여 진보와 보수, 여와 야로 양분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바로 읽지 못한 편협함의 발로이거나, 그 자체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진영논리의 악용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질은,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국민들이 어떻게 견제 · 감시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2016, 국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의 힘으로 '선출된 권력'을 잡았다. 2019, 역시 국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의 힘만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잡자. 다시, 촛불혁명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