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20. 1. 2. 23:32

경자년이 밝았다. 북쪽이 새로운 셈법의 시간으로 제시했던 201912월도 훌쩍 지났다. 북미 간 갈등은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관심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쏠렸다. 하지만 올해 신년사는 없는 모양이다. 대신 북한은 작년 연말 4(1228~31)에 걸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많은 이야기가 긴 시간만큼이나 풍성했다.

 

전원회의가 채택한 결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니, 작년 411일 개정한 북한 신헌법의 내용을 부연 설명한 또는 재확인한 느낌이 강하다.


전원회의에서는 첫째 의정에 대한 결정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첫째, 나라의 경제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할것이다.

 

둘째, 과학기술을 중시하며 사회주의제도의 영상인 교육, 보건사업을 개선할것이다.

 

셋째, 생태환경을 보호하며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위기관리체계를 세울것이다.

 

넷째,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것이다.

 

다섯째,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화하고 도덕기강을 세우며 근로단체조직들에서 사상교양사업을 짜고들것이다.

 

여섯째,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강화하고 그 령도력을 비상히 높여나갈것이다.

 

일곱째, 혁명의 지휘성원인 일군들이 사회주의건설의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을 뚫고나가기 위한 정면돌파전에서 당과 혁명, 인민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분투할것이다.

 

여덟째, 각급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이 결정서를 집행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을 비롯한 해당 기관들은 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조치를 취할것이다.”[각주:1]


북한의 개정 신헌법[각주:2]에서 위 내용과 부합하는 부분들을 살펴보면, 1장 제3조에서 국가활동의 지침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명시했다는 점과 제2장 경제부문에서는 제32조에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추가했으며, 33조에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 실시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문화 및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는 제3장 제40조에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추가했고, 46조에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를 키워내는 것으로 명확히 했으며, 56조에 보건부문에 대한 물질적보장사업을 개선하여생명과 건강을 개선한다고 하였다. 4장의 국방과 관련해서는 제59조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무장력의 사명을 기존의 혁명의 수뇌부를 보위하는 것에서 위대한 김정은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결사옹위하고로 수정하였다.

 

헌법을 분류하는 이론에 따르면, 헌법이 그 사회의 규범과 현실의 일치 여부에 따라 규범적·명목적·장식적 헌법으로 분류한다. 이런 분류 기준에 의해 북한 헌법은 장식적 헌법이라 규정하는 이론들이 많다. 헌법에 부합해서 작동하는 국가체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 헌법을 관심 있게 고찰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위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에 합치하는 국가구현의 일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목전에 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호 간 이해의 폭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한 국가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그 국가의 헌법만큼 유용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북한 헌법의 변천사는 1948년 인민민주주의 헌법에서 1972년의 사회주의 헌법으로, 이를 다시 우리식 사회주의 헌법으로 개정한 1992년 헌법,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하는 1998년의 김일성 헌법, 권력승계형 2009년 헌법, 2012년의 김일성-김정일 헌법,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되는 2016년 헌법과 이를 수정한 2019년 신헌법으로 일별해 볼 수 있다.

 

이를 이렇게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1948년 김일성 권력 구축 헌법1972년 권력집중 헌법1992년 권력 분점 헌법1998년 권력 분산 헌법2009년 권력승계 헌법2012년 김일성-김정일 헌법김정은 헌법으로 말이다.

 

최근의 일련의 변화 중에 눈에 띄는 대목 몇 가지만 보자. 우선 신헌법 서문에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수정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우리 민족 제일주의우리 국가 제일주의로 바뀌는 시점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이후의 헌법 개정의 내용까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북미관계의 개선 여부와 무관하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계없이 자력갱생, 자력자강의 정신 즉, '자강력 제일주의'는 북한 사회에 유효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김정은주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추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이 부분의 삽입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자강력 제일주의는 김정은 위원장이 조선로동당 제1비서이자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시절이던 2016년 신년사[각주:3]에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혁명정신으로서의 자강력 제일주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제일주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합니다.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강의 길만이 우리 조국,우리 민족의 존엄을 살리고 혁명과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자기의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자기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건설대업과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반드시 우리의 힘,우리의 기술,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하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라는 용어는 19867월에 김정일 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나눈 담화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에서 민족의 개념은 혈연()에 의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자에게 민족이란 그리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민족의 개념은 주체라는 사상이다. 우리 주체 제일주의가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가 제일주의에서 국가의 개념도 그러하다. 사회주의에서 국가라는 단어도 그다지 유쾌한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여기에서 국가는 사상으로서의 주체가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화 한 것이다. , 우리 사회주의 제일주의가 되겠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호의 발사 성공 이후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20171130일 노동신문 사설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말이다.

 

2019년 개정된 14차 개정헌법 즉, 신헌법에 보면 유독 국가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부쩍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없던 문구가 새로 추가되거나 수정된 것을 서문에서만 보더라도 주체의 사회주의 국가’, 이는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 바뀐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 강국건설(이는 강성국가 건설이 수정된 것이다), ‘국가 실체로 빛을 뿌리게 되었다’(추가된 문구임), ‘국가 건설과 활동의’(추가된 문구임),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추가된 문구임), ‘사회주의 건설의 역군으로(이는 주제형의 새 인간으로가 수정된 것임)’,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제6장 국가기구편에서 제100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 이는 기존의 조항에서 국가를 대표하는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이번 조선로동당 전원회의는 북한 신헌법에 대한 재확인의 의미가 강했다. 신헌법이 이제까지와는 다소 다른 사회, 마치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독자적이며 완성된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존재감 같은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북한 사회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 http://m.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337 [본문으로]
  2. https://www.yna.co.kr/view/AKR20190711134500504 [본문으로]
  3. https://news.joins.com/article/19344937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