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1. 5. 24. 11:55

요즘, 나는 가수다 (이하 나가수)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대박입니다. 온라인 ·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나가수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사람 마음은 다 똑 같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받는 감동의 크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나가수 처음 몇 번 방송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별로 텔레비전과 친하지 않은 이유도 있고, 볼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고, 이승엽씨 야구 중계 볼 요량으로 집에는 유선방송을 달아 놓았지만 채널은 주로 영화나 스포츠 쪽에서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공중파 방송 볼 일이 거의 없는 탓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나가수에 출연했던 임재범씨의 '너를 위해' 노래를 듣고는 그때부터 나가수의 팬이 되어 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임재범씨가 지금까지 나가수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 '너를 위해'가 가장 훌륭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완전히 릴렉스 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르는 그 노래에는 분명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노래 속에 기승전결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마치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곡 '빈잔'과 세 번째 곡 '여러분'은 차라리 퍼포먼스 쪽에 가까웠다고 봤습니다. 그렇다고 감동적이지 않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대부분의 시청자 분들이 이미 감동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방송을 시청하고 노래를 듣는다는 점이 저는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성공 이유라고 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대감은 방송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부풀어 올라 있으며, 마음으로부터 감동 받을 준비가 충만하게 된 상태에서 방송을 시청한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감동적일 것이라는 선입관 같은 게 있다는 말씀이지요. 저 역시 잔뜩 기대를 한 채, 홈시어터 볼륨을 한껏 올려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으니까요. 이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개그맨 김형곤씨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너무 웃음에 인색한 것 같다. 코미디를 보러 왔으면 웃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마치 무대 위 코미디언과 대결이라도 하는 사람들 같다. 그래, 네가 얼마나 웃기나 한 번 보자라는 태도로 앉아들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제때 웃음이 터질 리가 없지요. 잘해야 피식하고 웃고 마는 정도라고 할까요.


저는 이 말에 참 공감을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들이 아주 많았으니까요. 제가 20대 때, 저는 연극 연출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대학로에서 하는 웬만한 공연들은 다 섭렵을 하고 다녔는데요.


작품 한 편 보고 나오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습니다. 객석 의자에 적당히 기대어 앉은 채 팔짱을 낀 약간은 삐딱한 자세로 작품에 몰입을 합니다. 그런데 말이 몰입이지 사실은 그 작품을 만든 연출자와 공연 내내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조명은? 무대는? 연출선은? 음향은? 의상은? 배우들 연기는?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저건 정말 멋지군... 대단한데... 이러면서 작품이 끝날 때까지 1시간 20~30분 정도 연출자와 혈투를 벌이고 나오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솔직히, "당신이 얼마나 작품을 잘 만들었나 한 번 보자" 라는 심리가 정말 강했습니다.


특히, 연출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오죽하면 배우들이 이런 이야기를 다 합니다. 공연 중에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 중에 연출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는 이야기인데요.


객석에서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사람 열에 아홉은 연출하는 사람이라는 농담이었습니다. 연출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왜 그러냐는 배우들의 질문에 저는 위와 똑 같은 대답을 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로서의 근성 때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요?


이처럼 감상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보니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받을 일도, 웃을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 처음으로 연극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 1990년인가 91년도에 내한했던 러시아 국립극단 공연으로 기억을 합니다만, 극단 이름은 정확치가 않습니다.


아무튼 그 극단이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던 '햄릿'이 제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정말 충격과도 같았던 작품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저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로 화답을 해 주었으니까요. 어떻게 대작 중의 대작이라는 '햄릿'을 천장에 매달아 놓은 검은색 기둥 네 개에만 의지한 채, 텅 빈 무대로 시종일관 끌고 가며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요즘은 감동 받을 준비, 웃을 준비, 박수 칠 준비, 따라 부를 준비, 때로는 기립 박수 칠 준비까지 단단히 하고 공연장이나 콘서트 장을 찾습니다. 이제는 보고 즐겨야 하는 관객의 입장이 되었으니 그때의 그 프로 근성은 남의 이야기로 돌려놓은 채 말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20대 때 무대를 향한 열정 그것을... 요즘은 나가수를 보면서,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 속에서, 바로 그 정열을, 근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그것에서 제 나름의 큰 감동을 받습니다.


나가수에 출연 중인 가수 여러분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