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1. 3. 26. 21:55
인류 최악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지방을 휩쓸고 간지도 벌써 일주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소중한 재산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많은 피해자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연재해 이후에 빚어진 원전의 작동 불능과 방사능 오염 물질의 확산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인 것 같습니다. 도쿄의 수돗물조차 오염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정상치의 1만 배가 넘는 오염물질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는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


이제 일본의 방사능 문제는 비단 일본 열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주변국, 더 나아가 전 세계인들을 핵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참 아이러니하게 생각했던 점은 전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도 원폭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뻔히 예견되는 불행의 씨앗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 삽으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로까지 발전시켜 버렸다는 점에 일본 정부의 대응 미숙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정말, 자국의 기술력과 힘만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는 타국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어차피 폐기처분해 버리려던 낡은 원전을 이번 기회를 빌려 손 안대고 코 푼다는 식으로 그렇게 처리해 버리고 팠던 도쿄전력의 사심이 크게 작용했던 탓인지,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실, 방사능에 의한 피해라는 문제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 일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그 피해를 당해 본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조차 그런 경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뿐이지 우리나라에도 원폭 피해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이 아주 많이 계십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폭 피해를 당할 때 현지에서 생활하고 계시던 한국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분들은 대다수가 일제 강점기에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신 분들이거나 아니면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분들입니다. 현재 알려져 있는 것만 약 2600분 정도라고 합니다만, 본인이 원폭 피해자임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해서 숨기고 계시는 분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폭 피해는 본인뿐만 아니라 2세와 3세 등 그 후손들에게도 유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에게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 됩니다. 본인의 자식에게는 다행히 별 영향이 없었다고 해도 자식의 자식에게는 혹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원폭 피해자와 관련해서 제게는 아주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한 분이 계십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故 김형율님입니다. 이분은 원폭2세였습니다. 어머님이 히로시마에서 원폭피해자였는데, 어릴 때부터 온갖 병치레로 고생을 하다가 나중에 본인이 '선천성 면역결핍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원폭2세임을 커밍아웃합니다.


특히, '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회장으로 일하며 원폭2세 환우들의 처우개선 및 치료, 나아가 평화와 인권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활동을 합니다. 이때 이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 도움을 청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5월 20일~22일까지 도쿄에서 열렸던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협의회'에서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며칠 뒤인 5월 29일 피를 토하며 쓰러진 채 영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부음(향년 35세)을 전해 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지난 2007년 초, 故 김형율님의 일대기를 정리해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부산 자택으로 찾아갔습니다. 고인이 생활하던 방은 고인이 생전에 쓰던 그대로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방에서 2박3일 동안 먹고 자고하며 이것저것 하나하나 자료들을 정리하고 부모님 말씀을 녹음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부터 제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떠 오르더군요. 한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 본 후에 오는 엄청난 중압감. 정말 몸이 떨리는 듯 했습니다. 저와 같은 평범한 범인들의 일생과는 너무도 다른 것 같은 그 삶의 고통과 무게 앞에 저는 머리가 혼란스러워 도저히 작업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8년쯤에 부산대 전진성 교수께서 그 작업을 끝내고 고인께서 생전에 그토록 부르짖던 외침 그대로를 제목으로 한 인물 평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전진성 저, 휴머니스트)』로 잘 정리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짐의 절반은 덜어주신 것 같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던 고인의 목소리가 새삼 귓전을 맴도는 요즘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