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5:31

4일 일본의 일간지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북에 남아있는 납치자 가족들을 데리러 평양을 다시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조심스럽게 보도했다.

또한 얼마전 야마사끼 전 자민당 부총재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여 북한쪽 담당자들과 납치문제와 북일수교 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와 납치자 가족회 및 관련단체들로부터 배신자라며 호되게 비난을 당했던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납치자 가족들과 함께 반북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던 인물로 대북 강경파의 역할을 자임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히라사와 자민당의원이 아사히 텔레비젼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암시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대북 분위기 전환 조성에 주력했다.

물론, 본인의 직접적인 언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함께 출연했던 패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지금까지 얘기했던 내용들이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북일 당국자 공식회담에서 충분히 합의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본인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였지만 그들(야마사끼 전 부총재와 히라사와 의원)의 지난번 중국 방문을 고이즈미 수상이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끝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와 야마사끼 전 부총재는 이번 공식회담을 위한 사전 예비회담의 막후 조정자 역할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히라사와 자민당의원은 북한 당국이 경제원조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따라서 무조건적인 납치문제 해결이 될 것이다라고 몇 번에 걸쳐 강조를 했지만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난처한 질문에 당황해 하는(특히, 평양선언 이후 북일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그쪽 주장이 어떤 의미냐? 그쪽 입장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 개인적으로 이 질문을 한 여성작가 패널은 다시는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참가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리고 싶다. 몰라도 참 너무 모르고 있더라)그가 남긴 여운은 이것이었다.

북이 말하기를 "설사 납치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도 우리 내부 사정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1년 넘게 끌어온 북일 국교 정상화 문제가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듯이 보이며, 평양선언의 실천이 현실화 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최근 일본의 메스컴이 쏟아내는 악의적 북한 때리기를 진저리나게 보아온 대다수 재일코리안들 역시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공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약 1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북일 문제가 어떻게 불과 몇 일 사이에 180도로 바뀌게 되었을까? 사실 평양선언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아주 당연한 결과일 뿐인데도 그동안 일본정부의 행태 및 메스컴의 동향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특히 일본국민들이 받아야 하는 충격은 훨씬 클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일본정부 및 메스컴이 쏟아내온 정보들은 북은 ‘악의 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악의 축인 북과 국교를 정상화한다? 정부의 꼭뚜각시로 전락한 일본 메스컴들이 해야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북한 칭찬하기가 그것이다.

우매한 국민들에게 이제는 북도 괜찮은 나라라는 메세지를 특집으로 쏟아내야 할 것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괜찮은 나라까지는 아니어도 좋으니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전달해줬으면 고맙겠다.

필자가 지난 평양선언 직후에 쓴 글에서도 지적했던 바와 같이 역사적인 평양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일본정부의 무모한 모험주의와 대미 종속적 외교 행태로 인해 납치문제 및 북일 국교 정상화 문제에 대한 주도권은 북으로 넘어갔다. 그 연속선상에서 이번 북일회담도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정부는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대국민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겠지만 이번 회담이 성공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고이즈미 총리가 다시 평양을 방문하든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북일 관계가 정상화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북한외교의 승리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앞으로도 상당 부분 북에 끌려다니는 외교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꿰야된다.

사실 이런 북일 분위기가 조성된 이면에는 중국쪽의 압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북일 국교 정상화 문제는 당사자 중의 한쪽인 일본이 배제된 채 이미 지난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으로 결정난 것으로 봐야 한다.

외형적인 방문 목적이야 중국의 개방 경제에 대한 시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목적이었을 뿐 진짜 이유는 바로 북일 국교 정상화와 이에 대한 최종적인 의견교환 또는 이견 조율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고이즈미 정권 역시 두 가지를 얻고 윈윈 게임이었다고 자평할 수는 있겠지만 국제 외교면에서 허접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분명 마이너스라고 본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정권이 얻을 수 있는 두 가지는 무엇일까?

첫째는 흔들리고 있는 정권 기반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7월의 참의원선거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단순하게 정권의 안정화 차원이 아니라 정권 연장이냐 끝이냐의 갈림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충격적인 뭔가가 필요한데 납치자 문제 해결 만큼 현 시점에서 효과적인 처방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은 북일 국교 정상화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비이성적일 만큼 대북 공포감에 빠져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전쟁과 핵으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라는 심리적 만족감은 상당히 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에너지자원 확보 문제 아닐까 싶다.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 전쟁 역시도 미국에 의한 에너지 즉 석유자원 확보 전쟁이며, 미국과 중국의 알력 또한 에너지 확보를 들러싼 계산된 갈등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는 원활하게 에너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경제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현상유지조차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일본정부가 추진해 왔던 시베리아 유전 개발 및 천연가스 송유관 건설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중국측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일본정부는 저자세일 수 밖에 없었고 한편으로는 일본정부 길들이기의 중요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대일 카드 중의 하나가 바로 에너지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일본정부는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여진다.

어느모로 보나 일본정부의 백기투항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국제외교라는 것이 전쟁이 아닌 다음에야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없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윈윈으로 비쳐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른 한쪽 당사자도 자국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비정하지만 이것이 국제외교의 현실이며, 우리 정부도 그동안 많이 당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급박하게 변해가는 동북아시아의 정세변화 및 세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라고 본다. 특히나 중국, 일본, 미국 세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들 나라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요리할 것인지 노무현정부의 역할이 그래서 더욱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