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1. 5. 20. 17:09

지난 18일 또 한 분의 위안부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덧 해방 70년을 눈 앞에 두고 있으니, 그 전에 위안부의 삶을 사셨던 분들의 연세가 이미 80을 넘기셨거나 목전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정말 한 많은 삶을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분들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는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사실, 과거사와 관련한 많은 문제들은 직접적인 가해자인 일본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못지않게 일제에 부역하고 협조했던, 나아가 나라 팔아먹는 일에 일조했던 동족의 피를 가진 자들의 책임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부역자 및 매국노의 처리에 너무 무신경했던 것은 아닌지 심히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 놓고는 일본에게만 "인정해라" "사죄해라" "반성해라" 그러고 있잖습니까? 그러니 저들 일본 정부인들 이 말에 눈이나 하나 깜짝 하겠냐는 겁니다. 자신들을 위해 부역하고 매국 질 했던 놈들과 그 후손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 상층부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그리고 책임 없다며 우기고 있는 일본 정부 역시 그래요. 어떻게 책임이 없을 수 있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자고요. 지금처럼 의술이 발달하지도 못했던 당시 상황 하에서 성병이라는 것은 군부대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을 겁니다.

 

어느 기록에 보면 1917년 시작된 러시아 혁명 중에 러시아군의 대대 병력과, 혁명에 반대해 그곳으로 파견되었던 일본군 1개 사단 전체가 성병으로 제 기능을 못했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경험에 비춰 보더라도 정부 입장에서 군부대 주변에 산재해 있는 위안부 시설을 어떻게 관리했을지 추론이 가능해 집니다.

 

그렇다고 그런 위안부 시설들을 모두 폐기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랬다가는 젊은 군인들의 욕구 불만과 사기 저하는 물론 탈영병 문제로 군대는 군대의 구실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특히, 오랜 기간 해외로 원정을 나가는 부대의 경우 더욱 그렇다는군요. 그래서 군 부대 주변 위안부는 로마시대에도 존재했었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군부대 주변의 위안부 시설에 대한 정기 점검 및 의료진 파견, 나아가 위안부 공급과 관리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어야 했고, 이런 기록과 증언들은 산재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채, 돈벌이 수단으로 본 민간 업자들의 자발적 행위였다고 우기고만 있는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중에 일본인 위안부는 그런 직업을 가진 소수의 자발적 참가자 외에 강제로 동원된 여인들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합니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만약 위안부 공급이 딸린다고 해서 일본 여인들을 강제로 투입했다가는 "혹시, 고향 땅에 있는 내 누님과 누이도 이렇게 끌려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에 병사들의 사기가 땅으로 떨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외국인 특히, 점령국 여성들이나 전쟁포로를 위안부로 동원한다는 것이지요.

 

강제로 끌어다가 성 노예로 써 놓고도 책임 없다며 뒤로 나자빠져 있는 일본 정부, 돈 벌게 해 주겠다며 어린 처녀들 꼬드겨 팔아 넘긴 간악한 부역자 놈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래, 그 여인들이 네 누이와 딸내미였더라면…"

오늘의 결론, 닥치고 사죄 · 친일청산!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