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1. 7. 3. 13:25

비 내리는 주말의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이런 여유가 때로는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전, 라디오에서 이외수 선생님 광고를 듣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들어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외수 선생님께서 "제가 도사입니까? 아닙니다. 저 역시 물어보니 다들 …" 로 시작하는 어느 증권사 광고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하게 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사전이나 작은 글씨 볼 때 또는 바늘귀 꿸 때 눈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한다는 것. 가끔은 한 번씩 확인 차원에서 다리 쭉 펴고 앉아 앞으로 몸을 굽혀 양팔로 발목잡기를 해 보는 것. 또 하나는 라디오를 끼고 산다는 것 등이 그것 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님께서 바늘귀를 꿰지 못해 저에게 대신 부탁하실 때 도대체 그렇게 큰 바늘 구멍이 안 보인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일부러 그러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때로는 윗몸 일으키기가 안 되시는 어머님 보며 마냥 즐거워만 했던 자신의 철 없음이 이 만큼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곤 합니다.

 

또 하나는 무엇을 하시든 소형 라디오와 함께 하시던 아버님을 보며 아니 워크맨으로 원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닌데 무슨 재미로 라디오를 저렇게 듣고 계실까 했더랬습니다. 당시 우리들에게 라디오 프로그램은 밤 늦게하는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 정도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 역시 라디오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곤 합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라디오 켜는 일입니다. 주말이면 하루 온 종일 라디오를 켜 놓고 삽니다. 사무실에서도 작게 틀어 놓고 업무를 봅니다.

 

주말이면 한 번씩 나가는 우리 집 해피와의 산책을 위해 작은 소형 라디오도 하나 구입해 놓고 한 두 시간씩 산책 시에 유용하게 듣고 다닙니다.

 

저는 주로 93.9Mhz CBS 기독교 방송에 채널을 고정해 놓고 있는데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4050 세대에게 딱 어울리는 음악 위주로 선곡되어 있어 듣기에 좋습니다. 물론, 저 역시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 채널은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어 누구든 편하게 들으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론이 길어졌군요. 아무튼 그렇게 오늘도 라디오와 함께 하루를 하면서 좀 전에 이외수 선생님 광고를 만나게 되면서 문득 옛날 일이 떠 올랐습니다.

 

대학교에 입학을 한 후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점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런 게 대학생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있어 더욱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잡식성 독서에 한참 빠져 있을 때 주로 읽었던 책들이 철학자이신 김형석 교수님, 안병욱 교수님, 김동길 교수님(이분도 그때는 참 멋진 분이셨는데), 함석헌 선생님, 이외수 선생님 소설, 창작과비평 류의 잡지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게 이외수 선생님의 소설 '들개'를 읽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기억으로는 두 남녀가 폐허가 된 학교 교실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이야기로 남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큰 캔버스에 들개 한 마리를 그려 놓고 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그 소설 중간쯤에 두 남녀가 교실 바닥에 누워 벽 틈새로 밤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누구의 대사였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오늘 우리의 삶은 한 순간의 꿈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글을 읽은 순간, 뭔가 머릿속에서 불빛이 번쩍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래,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산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작은 불빛 하나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거야 싶더군요.

 

, 그때는 이런 저런 고민과 생각이 많을 때 잖습니까? 그 고민과 생각의 해답을 찾기 위해 참 많은 날들을 고뇌 속에 헤매고 다녔는데, 그것들 중의 하나인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을 '오늘의 삶은 한 순간의 꿈'이라고 믿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나의 삶은 또 다른 세상의 내가 꾸는 하룻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지요. 그 꿈이 깨는 순간 나는 저 세상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 마치, 우리가 잠을 자며 꿈을 꾸다가 꿈에서 깨는 순간 현실로 돌아와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세상은 또 어디일까요? 미처 그 해답을 찾기도 전에 현실의 부조리함에 먼저 눈을 뜨게 되어, 그 답 찾기는 포기한 채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