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1. 8. 16. 16:36

자주 하는 분들이야 그런 일 없지않을까 싶은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생색내는 일에는 꼭 티가 나는 법인가 봅니다. 후유증이 아주 크군요.

 

지난 연휴기간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제천에 있는 억수 계곡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자연 속에 몸을 맡긴 채, 계곡 물에 발도 담그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참 삼겹살을 구워 막걸리와 소주 한 잔씩을 하고 있는데, "저 애 좀 잡아주세요" 라는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무심결에 계곡쪽을 바라보니 어린아이 하나가 계곡물에 떠내려 가고 있더군요.

 

전날 비가 많이 내려 계곡물이 크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거센 물줄기가 어른조차도 떠내려 가게 할 정도의 세찬 기세로 흘러내리고 있었거든요. 아마 위쪽 고인 물에서 놀다가 그만 물줄기에 휩쓸려 버렸던 것 같습니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생각이고 자시고가 없었습니다. 고기를 굽다 말고 얼떨결에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앞쪽에는 뛰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누군가 앞에서 뛰어준다면 제게는 조금 마음의 여유나마 생겼을 텐데 이건 뭐 저 밖에 뛰는 사람이 없었으니 제가 구하지 않으면 그 아이는 위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빠른 물살이고, 또 바위와 돌 투성이라 저 역시 속도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치자 더욱 속도를 냈고, 그렇게 30~40미터를 달리자 드디어 잡힐 듯 말듯한 거리까지 좁힐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계곡물로 뛰어들었습니다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아이를 잡지 못하고 저 역시 계곡에서 허브적 거리는 순간 아이가 큰 돌에 걸려 잠시 멈춰 있는 걸 보고 얼른 팔을 잡아채서 물 밖으로 함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서도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리든지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굽던 삼겹살을 마저 구우면서는 이런 생각이 다 들더군요. 두 번 다시는 뛰어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과 지갑은 물을 먹어 말릴 수 밖에 없었는데, 진정을 하고 나서 보니 한쪽 무릎과 발목은 돌에 부딪쳐 피가나고 있었고 또 한쪽 발톱은 위로 확 제켜진 채 역시 피가 흐르고 있더군요. 지금도 구두 신고 걷는데 약간의 불편함이 있습니다.

 

핸드폰은 하루종일 말렸더니 다행히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에 회색 줄이 굵게 그어져 있어 아무래도 조만간 새것으로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카드 쓸 일이 있어 결재를 하려했더니 마그네틱이 물에 잠겼기 때문인지 카드가 긁히지를 않는다고 하더군요. 문제 있는 카드들은 새로 발급을 받아야 할 모양입니다. 아마, 야외라서 지갑을 어떻게 말릴 수가 없길래 대강 물기만 제거하고 가방에 그냥 넣어두었더니 마그네틱이 손상을 입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간만에 좋은 일 한 번 했더니 후유증이 제법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여름철 계곡 물놀이는 정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흐르는 물의 양에 비해 물줄기의 세기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과 함께 계곡을 찾는 분들은 한시라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