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분들이야 그런 일 없지않을까 싶은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생색내는 일에는 꼭 티가 나는 법인가 봅니다. 후유증이 아주 크군요.
지난 연휴기간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제천에 있는 억수 계곡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자연 속에 몸을 맡긴 채, 계곡 물에 발도 담그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참 삼겹살을 구워 막걸리와 소주 한 잔씩을 하고 있는데, "저 애 좀 잡아주세요" 라는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무심결에 계곡쪽을 바라보니 어린아이 하나가 계곡물에 떠내려 가고 있더군요.
전날 비가 많이 내려 계곡물이 크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거센 물줄기가 어른조차도 떠내려 가게 할 정도의 세찬 기세로 흘러내리고 있었거든요. 아마 위쪽 고인 물에서 놀다가 그만 물줄기에 휩쓸려 버렸던 것 같습니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생각이고 자시고가 없었습니다. 고기를 굽다 말고 얼떨결에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앞쪽에는 뛰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누군가 앞에서 뛰어준다면 제게는 조금 마음의 여유나마 생겼을 텐데 이건 뭐 저 밖에 뛰는 사람이 없었으니 제가 구하지 않으면 그 아이는 위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빠른 물살이고, 또 바위와 돌 투성이라 저 역시 속도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치자 더욱 속도를 냈고, 그렇게 30~40미터를 달리자 드디어 잡힐 듯 말듯한 거리까지 좁힐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계곡물로 뛰어들었습니다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아이를 잡지 못하고 저 역시 계곡에서 허브적 거리는 순간 아이가 큰 돌에 걸려 잠시 멈춰 있는 걸 보고 얼른 팔을 잡아채서 물 밖으로 함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서도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리든지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굽던 삼겹살을 마저 구우면서는 이런 생각이 다 들더군요. 두 번 다시는 뛰어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과 지갑은 물을 먹어 말릴 수 밖에 없었는데, 진정을 하고 나서 보니 한쪽 무릎과 발목은 돌에 부딪쳐 피가나고 있었고 또 한쪽 발톱은 위로 확 제켜진 채 역시 피가 흐르고 있더군요. 지금도 구두 신고 걷는데 약간의 불편함이 있습니다.
핸드폰은 하루종일 말렸더니 다행히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에 회색 줄이 굵게 그어져 있어 아무래도 조만간 새것으로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카드 쓸 일이 있어 결재를 하려했더니 마그네틱이 물에 잠겼기 때문인지 카드가 긁히지를 않는다고 하더군요. 문제 있는 카드들은 새로 발급을 받아야 할 모양입니다. 아마, 야외라서 지갑을 어떻게 말릴 수가 없길래 대강 물기만 제거하고 가방에 그냥 넣어두었더니 마그네틱이 손상을 입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간만에 좋은 일 한 번 했더니 후유증이 제법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여름철 계곡 물놀이는 정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흐르는 물의 양에 비해 물줄기의 세기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과 함께 계곡을 찾는 분들은 한시라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2007년~현재 > 일 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0) | 2011.10.18 |
---|---|
저는 정치에 관심 없어요 (0) | 2011.10.13 |
목놓아 울던 이들이여 (0) | 2011.10.05 |
연휴는 즐거워요 (0) | 2011.10.03 |
전북 서포터즈 처벌까지 할 필요 있나? (0) | 2011.09.29 |
일본에서 한국 남자가 인기 있는 이유? (0) | 2011.07.08 |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축하는 하지만... (0) | 2011.07.07 |
인생은 한 순간의 꿈? (0) | 2011.07.03 |
85.85 (0) | 2011.06.15 |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0) | 2011.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