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1. 11. 7. 19:29

인지상정, 이심전심, 역지사지. 이런 사자성어를 한 글자로 줄이면? 아마도 통할 통(通)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자성어 가운데서도 이렇듯 통함과 관련한 구절이 많음을 볼 때, 예부터 사람간의 통함이 참으로 중요한 요소였던 모양입니다.

 

토요일에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집사람과 함께 밖엘 나갔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홍탁삼합에 꽂혀서 중(中)자리 하나를 시켜 놓고 탁주 한 사발에 제대로 취해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집사람은 홍어는 입에도 대지 못하는지라 그 많은 걸 혼자서 해치우는 뿌듯함도 만끽하면서 말이지요.

 

홍어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하면 남들은 지레짐작으로 제 고향이 전라도 어디쯤으로 생각들을 하시는데요. 홍어하고는 전혀 친하지 않은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뭐, 제가 비록 그쪽 출신은 아니지만 홍어와 故김대중 전대통령님을 좋아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그쪽 분들 못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암튼, 그렇게 한 잔 거나하게 하고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자 마침 '나는 가수다' 호주편을 하고 있더군요. 재방송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운 채, 방송을 보는데 방청석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을 보니 순간 제 일본 생활이 떠오르며 제 눈가에도 이슬 같은 것이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눈물 글썽이는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그런 모습이 이해가 되더군요. 아마, 벅차 오르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웠지 않았나 미뤄 짐작해 봅니다.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는 말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당해보고, 받아봐야 조국의 소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

 

1999년 4월, 제가 일본 땅에 첫발을 디뎠을 때만해도 그곳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곤 프로야구팀 주니치 드레곤즈에서 활약하던 선동렬 선수와 이종범 선수가 다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국하면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IMF 직후이기도 했으니 더 말할 것이 없었던 때였지요.

 

하지만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2002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개최하게 되고, 한국이 선전을 해서 한국인들 기좀 살려 주나 보다 했더니 웬걸,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욘사마라는 대박에 이어 한류 열풍이 줄줄이 사탕으로 엮어져 들어오더군요.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아마, 그날 '나는 가수다' 방청석에서 눈물 글썽이던 분들도 같은 심정 아니었을까요? 저렇게 멋지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가수들이 수두룩한 나라,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저 세계 60억 인구에게 무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빼어난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나라, 그 순간 그들에겐 조국 대한민국이 많이도 자랑스러웠을 겁니다.

 

호주와 한국, 게다가 재방송이라는, 시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른,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가운데서도 통(通)함을 허하니 제게도 그 감동이 그대로 전달되어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감정이입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통함, 그 중요성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는 예 아닌가 싶어 기술해 봤습니다. 하지만 뭐, 비단 이런 예 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사회 역시 이 통함의 부재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오죽하면 방송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낮 간지러운 '나는 꼼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80년대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 잉크 등사기로 마구 찍어내 돌리던 유인물이란 게 있었습니다. 언로가 통제되어 있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의견과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꼼수다'는 21세기형 디지털 유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검열을 피해 지하 골방에서 등사기로 밀어낸 80년대식 유인물이 '아날로그형 유인물'이었다면, 전파라는 방식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디지털형 유인물' 말입니다.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불행한 현실입니다.

 

(通)함을 허하시오.




'2007년~현재 > 일 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0) 2011.12.23
통합진보당 출범식  (0) 2011.12.11
성공하고 싶다면 상상하라  (0) 2011.11.14
우리도 김장했어요  (0) 2011.11.13
83.60  (0) 2011.11.08
한 · 중 · 일 같은 한자, 다른 뜻  (0) 2011.10.20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0) 2011.10.18
저는 정치에 관심 없어요  (0) 2011.10.13
목놓아 울던 이들이여  (0) 2011.10.05
연휴는 즐거워요  (0) 2011.10.03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