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2. 2. 4. 19:03

비겁하다. 두려움의 시대다. 그래서일까? 다들 예민한 문제에는 입 다물고 나 몰라라 한다. 그리고 엉뚱한 곳에다 대고 화풀이를 한다. 마녀사냥식 해법이 난무한다.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산다는 게 몹시도 부끄러운 이유다.

어느덧 우리는 자본이 종교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마디로 돈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돈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된다. 그리고 거기서 반칙과 특권이 생겨난다. 일용할 양식과 생필품을 서로 맞바꾸어 갖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이조가리가 이제는 인간을 종속시킨다.

옛날로 돌아가 보자. 우리에게 인터넷이 부재했던 그때에는 부모님 말씀과 학교 교육, 책에 나오는 내용만이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세상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 말씀과 내용은 역동적이지 못한 정형화된 복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세상을 이만큼 살아온 나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인터넷 곳곳에 넘쳐난다. 또한 나 역시 궁금한 어떤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에 의존할 지경이니 가히 정보의 바다라 할만하다. 게다가 다양성과 개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논리의 홍수 속에 예전의 가치는 부정되기 일쑤다.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청소년의 사회는 어른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이치와도 통한다. 어른들이 사는 사회는 개판인데,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살만한 곳일 것이라는 막연하고 안일한 믿음이 오늘의 청소년 문제를 키운 가장 큰 이유는 아닌지 되돌아 봐야한다.


우리세대의 정신적인 성장통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가장 궁극적이며 원초적인 물음은 이것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왜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가여야 하며, 그들이 하는 모든 침략과 전쟁을 통한 약탈 행위는 용인되어야만 하는가라는 불합리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교내 바닥에 그려 놓은 큼지막한 성조기를 살포시 즈려밟고 다니며 항의 표시를 내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자신의 존재적 무력감에 대한 보상 행위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의 무모한 패권주의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그들의 대통령이 부시면 뭐하고, 오바마면 뭐하겠는가? 태생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는 토양에서 자랐는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반칙과 특권을 정의해 주는 가장 좋은 예라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 사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이 될지, 우리의 아이들이 그걸 보고 무엇을 배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하나 아파트값 올려주고, 경제 성장시켜 주고, 그래서 돈 많이 벌어 부자 되게 해주겠다는 사람에게 올인한다.


묻고 싶다. 그래서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지셨나? 곳간은 튼실하게 쌓이셨는가?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정치를 하신다 해도 지금과 같은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모두가 부자 되는 세상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

우리 성인들의 사회가 이럴진대, 우리 자식들의 세상인들 더 말해 무엇하랴. 학교가 불안한가? 우리 아이들이 걱정 되시는가? 그렇다면 먼저 성인 사회의 반칙과 특권부터 철폐토록 하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