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2. 4. 27. 17:18

요 며칠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음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미처 펴보지도 못한 채 생을 달리한 어린 생명들의 영전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바칩니다.

 

저는 교육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냥 사회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사교육업자에 불과한 한 사람입니다. 언론의 보도나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해악과도 같은 존재가 사교육 시장이지요.

 

그런데 왜 사교육 시장은 이렇게 번성하고 날로 커져 가는데 반해 공교육은 문제시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공교육이 문제라면 사교육에서 좀 배워가면 좋을 텐데 이조차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한 노력들은 등한시 한 채 무턱대고 사교육은 악이요 공교육은 선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대립구도 또한 분명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그와 같은 적대적 인식을 불식시켜야 상호보완적 관계가 정착될 수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공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가정과 학교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공교육 성공의 키워드는 가정과 학교가 공히 쥐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실천이 따르지 않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를 실천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 같이 한 번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아주 궁극적으로 학교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회구조 자체가 변해야만 가능합니다. 학벌로 대표되는 카르텔이 깨져야 교육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학벌의 카르텔을 인정한 선에서 공교육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 되지 않을까요? 바로, 이 지점에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있습니다.

 

가정, 교육의 주체라는 인식이 중요

 

저는 학교 교육에서 선생님들이 매를 드는 것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 매를 들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학생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이나 부모님을 모셔 오도록 하는 방법(부모님 호출)을 찾아보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사전에 유선상으로 부모님께 통보해 드리는 작업은 필수적이라 사료됩니다.

 

체벌 또는 사랑의 매. 글쎄요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가정 역시 교육의 한 주체라는 인식과 이에 따르는 헌신적(?) 노력 없이 아이가 학교교육만으로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현명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습득할 수 있게끔 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선생님에 의한 체벌은 아무리 사랑의 매라는 예쁜 말로 포장을 한다손 치더라도 감정에 손상을 입힐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더라도 그렇고, 제 경험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매는 때로 심하다 싶은 것조차도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저출산이라는 사회 분위기 하에서 자기 자식이 학교에서 맞고 오는 것에 찬성하실 부모님들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들 많아야 한두 명의 자식들만을 두고 있으니 애지중지라는 말이 실감이 안 날수가 없습니다.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가십성 기사 중에 밖에서 맞고 온 자식을 대신해서 부모님이 보복성 폭행(친구 또는 선생님을 향한)에 나섰다가 문제가 된 사실들이 그 한 증거라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부모 되기 참 힘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각박해져만 가는 살림살이에 맞벌이가 아니면 생계유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는 자식의 인성교육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부(父)가 되었든 모(母)가 되었든 적어도 한 사람은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신경 쓸 수 있는 정도의 여유로운 사회라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현명한 정치적 선택이 그런 사회를 앞당길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학교, 평등과 공존의 이념에 입각한 교육

 

입시라는 게 아예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제 상식으로는 그런 세상이 쉽게 머리 속에 그려 지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공교육의 입시 공장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교육이 입시 위주로만 흘러서야 쓰겠습니까? 제가 제시할 수 있는 바람직한 학교교육 방식은 눈 높이 교육 또는 평등 교육이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교육과 입시를 학생들 눈 높이에 맞춰, 즉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풀어나가는 방식입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사교육과 공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소수 정원제의 맞춤형 교육이 그것일 겁니다.

 

공교육은 과밀학급 탓에 사교육이 추진하고 있는 이런 식의 눈 높이 교육이 실효를 거두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반에서 1등 하는 친구와 꼴찌 하는 친구를 동시에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학교 교육이 소수 정예식 맞춤형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게 일차적인 요건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무엇을 교육할지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경쟁의 평등 원리가 뒤따라야 합니다. 즉,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끼리 경쟁을 붙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만원짜리 과외를 받는 지역 그룹이 있다면 그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제대로 다닐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의 지역 그룹이 있다면 역시 그들끼리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 되면 서울대의 경우에도 이중 삼중으로 학생 모집방식이 다를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1그룹에서 몇%, 2그룹에서 몇% 등으로 현실에 맞게 학생 선발방식이 다양해지게 되면 지금처럼 서울대출신 부모를 둔 학생들만 다시 서울대에 진학을 하게 되는 불합리한 현실도 좀 바뀌게 되겠지요.

 

바로, 이런 게 올바로 된 경쟁의 원리라 생각합니다. 현재의 방식처럼 체급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을 사각의 링 위에 올려 놓고 타격전을 벌이게 하고는 1등부터 꼴등까지 무조건 줄 세우고 보는 식의 경쟁체제는 우리사회를 만민의 천민화로 이끄는 지름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가 지배하는 거지 같은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첫 출발이 되어야 할 취업이나 창업 역시 같은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유전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발선 자체마저 달라지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타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인생 새출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평생교육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야 한 번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창조해 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평등의 원리에 입각한 경쟁체제가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변치 않고 지켜진다고 하는 절대적 가치로 될 때 비로소 우리사회는 숨 좀 쉬고 살만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체제를 다자공존(多者共存)의 사회로 바꾸어 가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상위 1%가 모든 걸 독점해 버리는 승자독식의 구도는 인간을 천민화 함은 물론 오직 승리만이 정의가 되어버리는 정글과 같은 사회, 인간 삶의 역동성마저 저해하고 부정과 부패 · 특권과 반칙이 제 세상인 양 판을 치며 행세하게 만드는 구린내 나는 사회로 변질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원칙과 상식 · 정의가 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며, 이의 실현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되새겨 봐야 할 시점입니다.

 

추신: 총론으로서의 이 글과 관련한 기술적인 문제 구체적인 시행방법, 교사의 업무분담, 교사충원, 재원마련 등의 각론 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한 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