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2. 8. 2. 19:50

담배 끊은 지 8년 정도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8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 중의 하나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담배는 참는 것이더군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은 담배 생각이 나곤 하니 담배의 중독성은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가끔은 꿈도 꿉니다.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한 후 아직까지 한가치의 담배도 입에 대지 않고 있는데, 간혹 꿈속에서 담배 한대 피우고는 매우 후회하는 그런 꿈 말입니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 제대한 후 다시 군대 훈련병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해 불가라는 표정을 짓는 것과 같은 류의 꿈입니다. 그만큼 금연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방증일겁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담배이야기를 꺼냈느냐 하면, 어제 오늘 전해 오는 안타까운 소식 중에 담배까지 피워 물고는 바닥에 침을 뱉어 가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10대들을 훈계하다 유명을 달리하신 한 30대 가장에 관한 뉴스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담배피우고 바닥에 침 뱉고 하는 10대들을 이해 못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의 10대나 우리세대나 다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컸는데 그 심정 왜 이해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제어되지 못한 반항은 이처럼 개인과 타인에게 큰 불행을 안겨줄 수도 있기에 사회적으로 문제시 된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 시절을 지금의 10대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행동하고 또 당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반항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금기에 대한 도전 또는 성숙에 대한 도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마치 어른인양 행동할 때 전해지는 짜릿한 쾌감 같은 것을 즐기고,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 있는 행위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온 몸으로 퍼져오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에 취했던 것도 같습니다.

 

또 그런 경우도 있었지요? 학교생활 역시 많이 때리고 무섭게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보다는 조금은 의식적으로 앞서 있는 선생님에 대한 어려움 · 존경심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고 말입니다.

 

흠씬 두들겨 맞고 난 후에 뒤 돌아서서 죽어라 욕하고 저주하고 다시 반항하고, 그러다가 또 얻어맞고 하는 등 동물적 상황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선생님이 있었던 반면, 별로 혼내지도 때리지도 않지만 껄렁껄렁 하는 학생들에게도 어딘지 모르게 어려웠던 그런 선생님도 분명 계셨습니다. 이는 아마도 지적인 도전이 가능한 선생님과 그렇지 않은 선생님의 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를 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현실 인식에 소극적이고 보수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분들을 일컬어 학문 장사꾼이라 여기며 무시하곤 했지요. 용감한 대딩의 지적인 도전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과 그때의 차이는, 어딘가에 존재해야 할 제어장치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가장이라는 권위가 그 역할을 담당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범이 되어 10대들의 행동을 제어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어디서고 그런 제어장치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날 야기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의 대부분은 이 제어장치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저편에는 가정의 제역할 찾기가 제어장치 부활의 핵심 키워드라는 확신 또한 숨길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10대들의 반항은 일탈이 아닌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