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2. 11. 26. 17:14


1. 주말에는 저녁 늦게 영화 남영동1985를 관람했습니다. 썩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나름 의미 있는 영화라는 점만큼은 인정합니다. 시간 내서 한 번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공포와 냉소라는 이중의 영화구조가 유기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고문이라고 하는 공포의 주변을 맴도는 형사들의 일상적인 대화와 농담을 통해, 고문을 가하는 장소라고 하는 공간적 제한으로 인한 지루함을 해소하고, 나아가 그런 일상 속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고문의 비인간적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연출의 의도는 읽히는데 이게 다소 어설펐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항변하고자 해도, 이미 저들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고문 행태는 악마적 본성의 극한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간 배치와 조명 그리고 연기자들의 표정과 몸짓 음향 등이 좀 더 공포와 냉소의 이중구조로 대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 높은 점수 주기를 망설이게 됩니다.


각설하고, 30여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그 괴물과도 같았던 인간들과 여전히 한 하늘 아래서 숨 쉬며 살고 있는 현실이 쉬이 납득이 되지 않는, 용서란 단지 하늘의 몫일뿐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만들어주기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영화였습니다.


2.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철이 철인지라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단일화와 대선관련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루고 있더군요. 근데, 역시 문제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토론 프로그램이 소설로 치장될 수 있지요? 토론은 기본적으로 팩트를 근거로 자기주장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들 막연한 본인의 주장을 합리한 하기 위한 팩트의 왜곡이거나 팩트의 일부 인용이 횡행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패널의 섭외와 선정 역시 합리적이어야 하지요. 그게 방송 본연의 자세인 공정성을 담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론 주제는 3인에 관한 것인데, 패널은 두 사람의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면 이 또한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방송이 방송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함을 너무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요즘입니다.


3. 안철수 후보의 사퇴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말의 성찬들도 보면 아주 가관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여기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다 보니 이런저런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 자리 놓고 둘이 경쟁하다 결국 한 사람이 포기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둘 다 후보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단일화라고 하는 게 또 그런 것이잖습니까? 둘 중에 하나만이 남게 되는 것. 거기에 아름다운 단일화라고 하는 것은 서로간의 목표이자 이상일 뿐입니다.


아니, 같은 당의 후보들끼리 대통령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더라도 일정부분 앙금이 남게 되는 게 현실인데, 안철수와 문재인 사이에는 이런 게 전혀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 또한 비현실적인 인식인 셈이지요.


게다가 정작 중요한 단일화의 성사에 방점을 찍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는 불협화음에만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으니, 이건 어떤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라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특정세력이 거대한 기득권층의 이해대변에 총동원된 느낌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쪽의 후보사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일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대로는 안 된다며 훈수질에 여념이 없는 진보먹물들의 행태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깨어나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말입니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제 느낌대로 바꿔 봤습니다. 나 하나 분노한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분노하고 너도 분노하면 결국 온 세상이 천지개벽 하는 것 아니겠느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