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2. 12. 20. 12:37

부모가 자식들 반값등록금을 막고, 조부모가 손주들 무상급식을 끊었다



술기운에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복잡한 머릿속은 정리가 되질 않고 자다 말고 가끔 무의식 속에서 이게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잠에서 깨어나 "꿈이어서 다행이다" 한 적도 많았는데, 오늘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게 현실이더군요. 태양은 떴는데 어제와 별 다르지 않은 태양이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를 앞에 놓고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 보는 12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름 내린 결론이 바로 부제로 달아 놓은 저 것. 부모가 자식들 반값등록금을 막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손자 손녀들 무상급식을 막았다는 사실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저런 현상을 보수화란 말로 두루뭉술해서 받아들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과거에 대한 향수병 같은 것 정도로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선거정책을 보고 드는 향수(보수화)라기보다는 이미지화에 의한 향수 즉, 정책 외적인 요소에 의한 감성의 자극을 의미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색으로 표현을 해 보자면 흑백 모노(정(靜)적)에서 시작을 해 점점 컬러화 되어 어느 순간 총천연색(동(動)적)으로 되었다가 다시 서서히 모노톤으로 변해 가는 것처럼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사가 단순화되며, 과거지향적으로 바뀌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오늘의 5060세대가 갖고 있는 과거의 추억이 오늘의 이런 결과를 만들어 놓았다는 결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잠시 그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나는 65세가 되면 그 이후에는 투표에 참가하지 말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인데, 저라고 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기권이라도 해서 젊은이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생각조차 해 보게 된 것입니다만, 저는 앞으로 제 사고의 변화를 나름 주의 깊게 살펴본 후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길지 아닐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고령화 사회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하는 그 말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마치 핵폭탄이 터진 것과 맞먹는 정도의 위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마도, 머지않은 장래에 사회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단적인 예로, 만약 지금과 같은 선거판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는 지역구라는 말은 무의미해 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선거는 지역구 대신에 세대별 의석수로 바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젊은 유권자들은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자신들의 미래에 관련한 장기적인 정책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데 반해, 50대 이상 고령세대에서는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런 장기적인 정책보다는 지금 당장 나에게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는 단기적 정책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세대간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 공약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이 문재인후보께서 주장하셨던 대학의 반값등록금 문제와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였습니다. 근데 이게 제대로 설득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공약이야말로 5060세대의 향수를 자극할만한 대단히 중요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에서 저는 이미지에 의한 향수를 건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타깃 설정에 오류가 있었던 게, 대학등록금을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주로 대학생층에게 호소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학에 다니는 주체는 그들입니다만, 그 돈을 내 주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 역시 대학생들에게 직접 호소하기 보다는 그들의 부모 세대를 주 타깃으로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또 하나는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이것 역시 별다른 이슈거리가 되지 못한 채 파묻혀버린 대단히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특히나 고령자 세대일수록 생활비 중에 의료비로 지출되는 비용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큰 중병에라도 한 번 걸리게 되면 집을 팔거나 땅을 팔아야 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고 말입니다. 주변에 그런 분들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잖습니까? 그걸 보면서 이거 남의 집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되니까 다들 사설 의료보험 한두 개씩은 들어두고 있는 것이고요.


이 두 가지 핵심 정책 역시, 직접적으로 호소해서는 선거를 위한 하나의 정책이라는 인상 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또한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을 통한 호소로 예를 들면 이런 것이 되겠지요.


대학생 자녀가 텔레비전 찬조연설로 나와 대학등록금 반값 실현을 위해 부모님의 도움을 간청하면서 부모님께서 대학을 다닐 때의 그 상황을 회상해 주는 겁니다. 지금의 5060세대는 다들 힘들게 학교를 다니고 했잖습니까? 그 기억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봐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의료비 상한제 역시 마찬가지지요. 우리 주위에 그렇게 과다한 의료비 문제로 고생하고 있거나 고생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 찾는 것 어려운 일 아닙니다. 그 분들이 나와서 진솔하고 솔직하게 왜 이 제도가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는 겁니다. 물론, 톤은 전체적으로 과거에 기반한 모노톤이어야 하겠지요.


참으로 별소리를 다 합니다. 나 보다 훨씬 더 아파할 그분들인데... 아직도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장황하게 여기까지 적어 내려왔습니다. 워낙 생각이 많았던 선거 후 12시간이었기에 어디엔가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장황하고 횡설수설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선거를 치러야 하고, 또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이 좌우될 것이기에 나름의 분석과 대안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일기를 쓴다는 느낌으로 이렇게 적어내려 가고는 있습니다만, 솔직한 심정은 이 모든 현실이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의 끈을 쉬이 놓아버릴 수가 없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