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3. 5. 30. 15:53


인간 사이의 관계든, 아니면 국가 간 관계든 세상사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사도 그렇잖아요. 별 탈 없이 잘 지내던 가족 간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작은집 또는 큰집과 갈등을 빚는 집들 주변에 종종 있습니다. 들어보면, 특별한 것도 없는데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는 것만 같다고들 말합니다.


국가 간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영원한 동지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 많이 들어봤듯이 말입니다. 영원한 적일 것만 같던 북쪽과 일본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는 죽을 쑤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북쪽의 그동안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핵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는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해 볼 수 없는 동일한 사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핵과 빵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난 5월 14일 일본 내각관방 자문역을 맡고 있는 이이지마 이사오(飯島勲)가 4일간의 일정으로 북쪽을 방문했습니다. 참고로 이이지마는 2002년 고이즈미 전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총리 비서관으로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총리의 두 번째 방문 때는 자신의 북쪽 인맥을 동원해 방북을 성사시키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일본 최고의 북한통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인물인 셈이지요. 또한 현재의 아베 총리 역시 당시에는 관방부장관으로 고이즈미의 방북에 동행했던 인물이기에 전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이번 북한 방문은 대외적으로 숨김이 없이 북경을 경유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실무진 선에서의 조율은 이미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5월 7일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6월 7일에는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뿐인가요? 6월말에는 한중 정상회담 또한 예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오바마 미 정부의 동북아 3국 정상들과의 연속적인 만남과 그 사이에 진행 중인 일본과 북쪽의 이례적인 관계 회복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해 볼 때, 아마도 7·8월 중에 북일 정상간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집니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 만남이 성사된다고 하면, 그건 단순한 북일 정상간의 만남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기회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 형식을 빌린 경제 지원, 그리고 핵무장 국가로서의 입지 확보와 안전 보장 문제 등을 동시에 세트로 진행하고자 할 것이며, 일본 역시 납치자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세트로 해서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 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북일 국교 정상화 선언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미국의 입장과 일본의 내부 문제 등을 들어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우선 미국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그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쪽이 여전히 신경 쓰이는 요즘 자신들의 대북협상 선결조건인 '先 비핵화'의 확고한 원칙으로 인해 쉽게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현실을 타개하고,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북미관계를 일본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체면치레는 물론 시간도 벌고, 한발 더 나아가 대북관계에서 미국은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는 승산있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을 통해 북쪽과 거래케 함으로써 북한의 요구도 들어줌과 동시에 일본의 군사대국화 계획까지 묵인해 주어 미일 안보 강화에 유리한 기반을 만들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북한을 중심에 둔 동북아 3국의 움직임을 연출하는 컨트롤 타워는 결국 미국이라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기에 미국과의 논의(혹은 지시) 없이 일본정부에 의한 독단적 결단으로 이런 일련의 일들이 추진 · 성사될 것이라 보기는 어렵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일본 국내 여론 역시 별반 걱정할 게 없는 것이, 아베 지지층이 대부분 대북 강경주의자들이라고는 해도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납치자 문제의 해결이라는 당근이 있기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 부정적일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납치자 문제의 해결과 북일국교정상화는 일본 보수우익 정치세력에게는 그야말로 꽃놀이패에 다름 아닙니다. 일본사회의 보수 · 진보 각 진영에 꽤나 강한 인상을 심어줄 것입니다. 여세를 몰아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의 개정으로까지 달려가려 할 것이며 자칫, 다시 자민당 장기집권의 서막이 열릴 수도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2002년 고이즈미 방북 시에는 왜 실패했을까? 개인적으로 세 가지 정도를 들고 싶은데 하나는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입김의 강도(추종의 정도), 북한의 미사일 및 핵 기술에 대한 믿음의 불확실성, 마지막으로 북일 양쪽 다 협상 파트너에 대한 파악 미숙 등으로 인해 충분히 여건이 성숙하지 못해 북일국교정상화 합의에 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며칠 전, 독일이 나치피해자를 위해 1조원을 추가 배상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본 역시 북쪽을 위해 배상 형식을 빌린 경제 지원을 할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일본이 독일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역사의식에 입각한 자의적 행위와 생색내기용 과거 면피 행태를 어찌 동급으로 취급해 줄 수 있겠습니까?


설사, 그렇게 북일국교정상화는 실현이 되더라도 앞으로 많은 갈등들은 계속 표출될 것입니다. 서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선택을 한 결과이니 감수하고 갈 밖에요. 뭐, 그렇게라도 한 걸음 한 걸음 평화를 위해 진일보 하는 것이라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제대로 되려면 일본 정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반성적 접근, 그게 정말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제 남북관계는 어찌 되는 것인가요? 이웃사촌에게 내 자리를 내준 채, 먼 친척임을 고집해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