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0. 6. 19. 01:41

우선, 제목이 좀 거시기 합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감이 있지요? 왜, 예전에 그런 거 있었잖아요? 어느 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일본 운전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신호가 바뀌면 신호대기 정지선 앞에 정확히 멈춰 선다는 얼토당토않은 것을 입증해 보이고자 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말입니다.


세상 어디라고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만 사는 땅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혼재해 살지만, 어느 쪽의 비율이 좀 더 높으냐에 따라 살 맛 나는 사회 또는 덜 살 맛 나는 사회가 되는 것일텐데요.


게다가 좋은 사람은 언제나 항상 좋기만 한가하면 그 또한 그렇지가 않지요? 선함과 악함은 인간의 내면에 양면적으로 존재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이익에 따라 이리 저리 휘둘리는 그런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시쳇말로 도덕군자들만의 나라는 어디에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게 되는 게 과거사 관련 문제입니다. 그래서 일본하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인데요. 이것도 같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획일적으로 일본인들 모두가 과거사와 관련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사회 내에도 분명히 과거사를 옹호하는 우익세력과 양심적인 시민사회 세력이 양립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목소리가 크고 힘을 갖고 있는 세력이 우익이다 보니까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일종의 우익 착시 현상이 강해서 일본하면 무조건적으로 '다 똑같은 놈들'하며 반감 먼저 갖게 만드는 것이지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온갖 어려움 다 감내해 가며 평생을 우익과 싸우고 있는 양심적인 분들도 정말 많이 계십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동물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동북아시아의 공존과 공생이라고 하는 보편성을 추구하려는 서로간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그런 시대로의 변화, 그 연장선상에 한일관계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시민연대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 화제를 돌려서 일본 사회에도 신호위반하는 운전자 있고, 무단횡단하는 보행자 있고, 도둑놈, 사기꾼 있다는 전제하에 글을 이어 가겠습니다.


도쿄에서 생활할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특히, 운전하기에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는 거의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경음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 홋카이도로 스키여행을 가, 4일 정도 삿포로에 체류하면서 전혀 경음기를 사용하지 않는 그들의 운전 습관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쉴 새 없이 눈이 내리고, 제설차량이 제설 작업을 하면서 도로는 정체되고, 차량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서 있는데도 옆에서 끼어들려고 하는 차량에게는 몇 번이든 순순히 차선을 양보해주는 겁니다.


순간, 제 모습과 비교가 되더군요. 끼어들려고 하면 빠~앙, 앞차가 앞차와 거리를 좀 둬도 빠~앙, 심한 경우에는 빨간 불에서 파란 불로 바뀌자마자 빵빵. 조급증이 만들어 놓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물론, 경음기을 울리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고 예방에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울릴 때는 반드시 울려야 합니다. 사각지대에 있는 차량을 보지를 못하고 급작스럽게 차선 변경을 하려는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거나, 어중간하게 차선을 먹고 달리는 차량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순기능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발하면 소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뭐, 이런 단편적인 것을 가지고 일본이 낫다 못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화적 차이 정도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반성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는 생각입니다. 매사가 바쁘고 급하기도 하겠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상대를 배려해 주고 기다려 주는 삶의 여유도 꼭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참견하기에 익숙한 문화에 살고 있는 듯싶습니다. 즉,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이야기인데요. 일례로 한국에서 생활하셨던 어느 일본 분께서 한국 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당황했을 때가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신의 집을 방문해서는 허락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보며 "어디보자 뭐 맛있는 것 없나?" 라며 마치 자기 집 냉장고 취급하듯이 할 때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본 분도 자연스럽게 그 속에 동화되어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다고는 합니다만, 남의 집을 방문해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을 때조차도 "화장실 좀 빌려주시겠습니까?(이용해도 되겠습니까?)" 라며 주인의 허락을 얻은 후에 사용하는 일본인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정말 황당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일본에서 공부를 할 때 일본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바랐던바 중에 하나가 '내 틀린 일본어를 바로 잡아주면서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뜻을 가끔은 내비치기도 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네 일본어는 훌륭해'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 대답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타인의 영역에 침범하고 싶지 않은 조심스러움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상대방이 지적해 주기를 바라는지 아닌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틀리는 족족 수정해 주고 바로잡아 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요. 이 역시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의 다름 아닙니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역사적으로 볼 때, 이렇게 우리와 다르게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는 서열을 중시하는 '무사문화'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무사가 대우 받는 사회였으며, 무사에게는 평민을 처형할 수 있는 권리마저 주어졌었기 때문에 상대를 베더라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남의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가 목숨마저 온전히 보존치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와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책이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용운 선생께서 쓰신 「일본어는 한국어다1,2권」인데, 가나북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이처럼 경음기라는 작은 것 하나에 조차도 한일 양국의 문화적인 다름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