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0. 6. 19. 01:51

역시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잔치인가 봅니다. 연일 새로운 소식들에 지구촌 전체가 울고, 웃고, 감동 받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있었던 월드컵 빅 이벤트 북한과 브라질의 멋진 한 판 승부 잘 보셨는지요? 저는 자다가 일어나서 잠깐 봤습니다만, 북한이 생각보다 굉장히 열심히 뛰더군요. 2:0까지 보고 결정적으로 지윤남 선수의 골이 터지기 전에 다시 잠자리에 드는 바람에 아침에 녹화 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아마, 오늘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람들 모이는 곳에서는 이 경기 이야기로 뜨거웠을 줄 생각합니다. 경기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는 특히 정대세 선수의 눈물이 가슴 한 쪽을 먹먹하게 만들더군요.


일본에서 짧지 않은 기간 생활했던 제 경험 상, 저는 정대세 선수가 흘린 그 눈물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을 조국이라 부르지 못하고, 같은 민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의 나라에서 받았을 차별과 고통을 이겨내고, 비록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조국의 대표로 부름을 받았다는, 아니 같은 민족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아주 복잡한 의미의 눈물이지 않았을까요?


정도의 차이는 엄청나겠지만, 정대세 선수의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제가 예전에 썼던 제 후배 이야기를 아래에 붙여 넣기 하겠습니다. 같이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내 후배 이야기다.


이 후배는 유도로 꽤나 유명한 서울의 모 대학에서 유도선수 생활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현재는 랭귀지스쿨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가끔씩 동네 유도 체육관에 나가서 몸도 풀고 중·고등학생들 지도와 연습상대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는 이 후배가 얼굴이 시뻘게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방에 들어와서도 씩씩거리며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캔맥주 몇 개를 사다 놓고 마주앉아서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 후배가 다니는 동네 체육관에는 초등학생에서부터 60대의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인들이 모여서 유도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등 뒤에서 들리는 '조센징'이라는 소리가 자꾸 귀에 거슬리더란다. 앞에다 대놓고 조센징이라고 하면 조센징이 아니라 캉코꾸진(한국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해 주겠는데 꼭 안 보이는 곳에서만 그것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그러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래, 여기는 당신들 나라니까" 라며 꾹 참았단다.


그런데, 그저께는 중학생들 몇이서 저희들끼리 연습을 하고 있다가 이 후배가 다가가자 그 중의 한 녀석이 대뜸 "선생님, 조선어 좀 가르쳐 주세요" 하더란다. 순간 그 '조선어'라는 말에 눈에서 불빛이 번쩍하며 더는 못 참겠더란다.


그래서 조선어를 배우기전에 유도연습을 먼저 하자고 하고, 그 중학생 녀석을 매트 위로 데리고 가서는 사정없이 던져 버렸단다. 그렇게 십여분 동안 그 녀석을 아주 초죽음을 만들어 놨단다.(안 봐도 상상이 간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징징 울면서 이제 운동 그만두겠다고 하고서는 가방도 안 들고 가버리더란다.


그리고, 어제는 그 중학생 녀석의 아버님이 아들 손을 끌고 체육관으로 오셨단다. 가끔 나오셔서 간단히 몸만 풀다 가시는 분인데 어제는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후배에게 연습 한 판 하자고 하시더란다. 순간 이 후배도 눈치를 챘단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서 오셨구나 하고.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자 하고는 이번에는 그 중학생의 아버지를 아들이 보는 앞에서 또 반은 초죽음을 만들어 놨단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노의 감정을 깡그리 쏟아 부었단다. 그렇게 한 게임을 치루고 나를 찾아 온 것이었다.


사실, '조센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 역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60대가 넘은 분들은 우리들 앞에서는 한국인이라고 하다가도 당신들끼리 대화할 때는 조센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나도 가끔 보아 왔다. 그러나 그것이 꼭 우리를 비하해서 부르는 차별적인 언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마도 이들의 오래된 습관 아닐까 생각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나, 서로의 신뢰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말이라면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한국에서 우리들끼리 이야기 할 때는 별 생각 없이 이들을 '쪽바리' 또는 '왜놈'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것 역시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현재 일본에서 한글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각급 학교의 교과서와 교과명도 한국어나 한글이 아닌 '조선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영방송인 NHK(일본 방송 협회)의 경우에는 한국어 · 조선어라는 표현이 걸려서 그런지 '한글'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일본에서 우리말의 공식적인 명칭도 '조선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2003년도부터인가 일본의 대학입시에 우리말이 제2외국어로 채택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명칭을 한국어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조선어라고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일본 정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남쪽과 북쪽의 서로 다른 팽팽한 견해 - 통일로 가는 길이 참으로 험난하고 멀다는 느낌을 여기서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난관들이 그 하나 됨의 민족적 염원을 가로막고 나설지 -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현실이다.


그렇게, 분노로 맥주를 삼키고 있던 후배 녀석의 눈가에 잠시 맺혀있던 건...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