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9. 12:34

노무현 대통령은 외신 지국장 간담회에서 부산에서 열리는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18~19일) 중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만날 의사가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촉발된 양국간의 갈등관계를 전향적으로 풀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에 적극 지지를 보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와 아예 담 쌓고 살 생각이 아니라면 자주 만나는 것이 양국관계 및 우리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일본측의 도발적인 망발이나 망언, 망동 등이 심히 불쾌하기는 하나 역으로 상대방의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구태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비교되면서 우리의 국제적 리더쉽은 한층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성과들이 국내적으로는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여 패배주의와 자기혐오주의에 푹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수구 냉전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순기능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일본 언론쪽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 역시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나는 언제나 만날 것을 희망하고 있다’라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사실 동북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일탈 문제는 일본이라고 하는 단일 국가만을 상정해 놔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국제적 힘의 역학관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또한 해결의 실마리 역시 그만큼 복잡하게 꼬여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임을 망각하고 일본과의 관계라는 단선적인 접근만을 고집한 외교 정책을 강요한다면 양국 관계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등장 이후 새롭게 짜여지고 있는 일본의 신흥 우익세력의 면면을 보면 대체적으로 친미주의적 성향이 강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외무성 역시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로 재편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친중파를 비롯한 아시아 외교 중시파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흐름은 미국과 일본의 정권 핵심쪽에서 공통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다만 일본쪽은 그 몰락의 강도가 훨씬 크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친미파라고 해도 미국의 어느쪽 시그널과 주파수를 맞추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 수 있음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아직 미국에는 중국과의 선린외교를 주장하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부의 흐름이란 차원에서 재계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 의한 단독패권주의가 아니라 다극주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은 돈이 흐를 수 있는 쪽으로의 움직임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라고 볼 때, 다극주의의 지향점은 미개발 대국들의 개발을 통한 패권의 분산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의 한가운데에 일본 역시 자리하고 있다. 이 속에서 일본 정권 핵심의 친미주의자들이 받아 들이고 있는 시그널은 미 단독패권주의이며,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우경화 분위기는 그에 대한 충실한 추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일본 정권 핵심의 외줄타기식 외교 행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기는 하지만, 이런 의견들이 대세가 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어쩌면 단독패권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의 몰락이 눈 앞으로 다가온 순간에나 대세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 정권 핵심의 의중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있으며, 그 힘 또한 막강하다.
 
한·일 관계 역시 바로 이러한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다국적 매듭 풀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한·일 관계가 단순히 한·일 양국간의 관계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서 어제 나온 '북·일 국교정상화 협의 재개' 소식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쪽에서는 지금이 북·일 국교정상화의 최대 적기임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리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같은 강경 우익인사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일 국교정상화에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고이즈미가 총리로 있을 때 이 문제를 푸는 게 서로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서 말이다. 고이즈미 신임 내각의 면면들이 강경파들로 짜여져 있음이 이러한 논거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자고로 결자해지라고 했다. 매듭도 묶은 쪽에서 푸는 게 맞다. 강경 우파로 행세하며 주변국과의 갈등 원인을 제공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아소 타로(麻生太郞) 외상이 적극 나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이들과의 만남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역할이자 업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현재의 한·일간 셔틀 외교를 한국·북한·중국·일본 4국간 셔틀 외교로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그게 바로 동북아 균형자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12월의 한·일간 셔틀 외교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