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해 피2021. 2. 12. 19:54

- 202122() 09, 해피 별이 되다

- 2009. 10. 5 ~ 2021. 2. 2 (114개월)

- 2010219일 우리 가족이 되어 '해피'로 살다

 

 

해피야, 사랑한다. (2013. 11. 02)

 

설 연휴다. 해피가 별이 된 지도 열흘이 된다.

 

내 곁에서 해피로 살든, 하늘의 별이 되어 내 곁을 떠나가든 내 가슴에 묻어둔 녀석이니 제 몸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두 눈으로 볼 수 없고, 내 양 손으로 만져볼 수 없다는, 그 한없는, 그리움과 안타까움만 빼면 말이다.

 

해피가 7살쯤 되었을 무렵, 간혹 켁켁하는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그때 이첨판폐쇄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강아지 심장병이다. 구체적인 발병 원인은 알 수 없고, 유전적 요인에 의한 발병으로 전문가들도 추측하는 것 같다. 수술은 일본에서나 가능하다 하여(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수술을 진행한 예가 있다고 함) 약을 먹으며 관리를 하고 있었다.

 

경험을 해 보니, 신장이나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는 경우, 잘 관리해야 3~4년을 더 사는 것 같다. 관리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약 잘 먹이는 일 정도다. 수술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이 약 먹이는 것 외에 뭐가 있을까 싶다.

 

수의사 선생님들은 그런 이야기 잘 안 해주시는데, 대략 그 정도 더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많이 놀아주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생활하는 게 나중에 아쉬움과 후회가 덜하지 않을까?

 

"약 잘 먹이고, 관리만 잘 하면 반려견의 평균 수명만큼 살 수 있습니다."라는 게 수의사 선생님 말씀이었다. 반려견들의 평균 수명이 대략 14~16살 정도라니 그 정도는 함께 할 수 있겠지 했는데, 이별의 순간은 훨씬 빨리 왔다. 심장병 진단 받고 약 4년(11년 4개월을 살고)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러니까 대략 4년 정도 약을 먹은 것이다. 그로 인에(이뇨제를 장기간 투약했으므로) 신장이 나빠졌고, 막판에는 췌장염 증세까지 겹쳤다.

 

아무튼 많은 고생을 하고 결국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녀석을 보내고 난 후에야 하는 녀석과의 대화법을 터득했다. 나의 무지에 참 많이 미안했다.

 

대체로 반려견을 입양하면 초보 반려인들은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우선, 소변 · 배변 가리기와 짖지 않는 훈련 시키는 게 제일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인간들과 공생을 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지켜주는 게 나와 이웃을 위해 이롭기 때문이다.

 

나도 녀석과 함께 하면서 처음에는 그 훈련이 제일 힘들었다. 짖는 것은 다행히 빨리 적응을 해서 거의 짖지 않고 살았다. 나중에 이첨판폐쇄부전증 진단을 받은 후에는 느슨한 관리 탓에 짖는 횟수가 늘기는 했으나 그렇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변 가리기는 한 때 잠깐 잘 되는 듯 싶었지만, 끝내는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집안에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던 녀석이, 혼자 둔 채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김 없이 배변판이 아닌 소파 옆이나 에어컨 구석에 소변을 봐 놨다.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변 실수를 하지 않았던 때가 해피가 많이 아팠던, 하늘나라로 가기 전 약 한두 달 간 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가족 여행 중에. (2013. 09. 20)

 

대략 일주일은 제 잠자리에서 누워만 있었고, 나머지 일주일은 아파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상태로, 밤이고 낮이고 두 세 시간을 서 있다가 잠시 우리 품에서 잠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소변 · 대변 보는 일이 거의 전부였을 정도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물론, 마지막 일주일은 거의 먹지도 않았다. 주사기로 미음 정도 먹였던 게 전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는 악화되었다. 악화되고 호전되는 상황은 정말로 빨랐다. 인간과 생체 시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하루는 녀석들에게는 대략 5~7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10살 이후 노령화의 속도와 노령견의 건강은 특히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병원을 가본들 별다른 처방이 없었다. 호흡이 불편한 것 같아 산소 발생기를 임대해 산소방을 만들어 숨 쉬기 편하게 해주니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3일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그 안에서 숨을 거뒀다.

 

간신히 엉덩이만 바닥에 붙인 채, 앞 두 발로 지탱하고 앉아 그 조차도 힘에 겨워 이쪽으로 쿵하고 잠시 후 다시 같은 자세로 옮겼다가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쿵하고 쓰러지던 녀석이었다.

 

그렇듯 힘들어 하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 그 날 새벽 6~7시쯤 해피에게 마지막 눈물의 인삿말을 전했다. "해피야, 우리는 괜찮으니까 이제 가도 돼.", "이제 가도 돼, 우리 해피" 그리고 두 세 시간 후 해피는 정말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그동안에는 늘 "우리 해피는 할 수 있어.", "우리는 해피를 믿어.", "빨리 나아서 꽃 구경 가자."라며 힘을 주고, 격려해 주곤 했는데 그게 녀석에게는 얼마나 힘든 고통이었을까? 이제 가도 된다 하니, 정말로 갔다. 미안하다, 해피.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그 2주 동안 조차도 거의 한 번도 소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이뇨제가 들어간 약을 먹은 탓에 물은 많이 먹여야 했기에 주사기로라도 물 보충을 해주었다.

 

당연히 소변도 자주 많이 본다. 몸이 아프니 참고 참았다 누느라고 횟수는 줄었지만 한 번에 많은 양을 배출했다.

 

그래도 어김 없이 제 배변판 위까지 힘겹게 걸어가서 소변을 봤다. 걷는 것조차 힘이 드니 배변판까지 정말 힘들게 걸어 간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닌 녀석처럼 걸었다.

 

나중에는 힘이 없어 한쪽 다리를 들지도 못하고 두 다리로 지탱하고는 소변을 봤고, 마지막 이틀은 그마저도 불가능해 배변판 위에 올려주면 그제서야 간신히 소변을 보곤했다.

 

녀석이 떠나기 전날에는 아예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저도 많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으니 어찌 그러지 않으랴. 눈물만 흘릴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녀석이 늘 이용하던 배변판이 좀 먼 것 같아서 제 잠자리 가까이에 배변판을 하나 더 깔아주었지만 한 번도 그곳을 이용하지 않았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지가 늘 이용하던 배변판에만 소변을 봤다.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녀석이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배변판에만 소변을 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했던 그 많은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뒤늦게야 알았다.

 

, 녀석이 나와 대화를 시도했던 것이로구나.

 

혼자 있기 싫어요”,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 “나도 데려가 줘요

 

녀석은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으리라. 말을 못하니 이곳 저곳에 오줌을 싸 놓으며 녀석은 본인의 의사를 그렇게 표현했지 싶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소변 실수는 그저 실수가 아니었던 셈이다. 의도된 행동이지 않았을까?

 

맞다. 녀석은 나와의 대화를 그런 식으로 시도했던 것이다. 나는 11년을 함께 하면서도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채, 때로는 혼을 내고 때로는 달래고 했다.

 

해피를 보낸 이제야 알겠다. 해피의 소변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나와의 무언의(하지만 애절한) 대화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나 곁에서, 해맑고 밝은 모습으로, 졸졸 따라다니며 변함없이 늘,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세월은 흘렀고, 해피는 나이가 많이 든 거였다. 나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 황망하게 널 보낸다.

 

미안하다, 해피.

 

 사랑한다, 우리 해피 (2015.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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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