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9. 12:50

고이즈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본 국민들이 우정국 공무원들을 이지메(따돌림)시킨 것에 다름아닐까?

역사에 길이 남을 압승. 오늘자 신문의 1면 머리기사이다. 11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는 고이즈미 자민당이 3분의2 의석 확보라는 예상외의 압승을 거둔 채 끝이 났다.

선거 전날 있었던 일부 언론들의 여론 조사 결과 역시 자민당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까지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비판적인 일부 언론은 자민당의 압승을 예고하는 여타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부적절한 언론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부적절한 언론플레이를 했던 그들의 기대조차 훨씬 뛰어넘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나왔다.

이로써 다소 무모한 듯 보였던 고이즈미 총리의 자폭 해산은 멋지게 성공한 셈이 되었다. 임기를 불과 1년여 남겨두었던 고이즈미 총리는 레임덕 걱정 없이 내년 9월까지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물론이고, 어쩌면 임기 연장이란 보너스까지 덤으로 받으며 최장수 총리라는 명예를 거머쥐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패장이 된 제1야당 민주당의 오카다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나 후일을 도모해야 할 처지가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어쩌면 그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선거패배에 따른 책임 추급과 당의 정체성 논쟁에 따른 내홍이 깊어지면 이탈 세력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고, 이는 곧 민주당 약세로 이어지면서 자민당 1당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해 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개혁, 그러나 실체가 없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참 재미있다고 느꼈던 점은 여야가 바뀐 듯한 선거 전략이었다. 여당인 자민당은 '개혁을 멈추지 마라'라며 사뭇 도전적인 모습으로 유권자들을 공략해 나가는데 반해, 야당인 민주당은 '일본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다소 수구적인 자세로 어딘가 모르게 나약해 보였다.

결국 일본의 유권자들은 고이즈미의 개혁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고이즈미 개혁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실체는 없고, 구호만 있다가 정답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속칭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내용은 3가지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째는 국가 재정의 건전화, 둘째는 북일 관계 정상화, 셋째는 도로공단 민영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정리된 게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고이즈미 개혁의 결정판, 네 번째 개혁과제로 우정산업 민영화 문제가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었지만 구체적인 논의들은 생략된 채 였다. 그렇다면 학습에 의해 체험한 바와 같이 우정산업 민영화 역시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는 확실한 고이즈미 1인 퍼포먼스였다. 고이즈미 혼자 싸워서 승리한 선거라는 뜻이다. 선거기간 내내 고이즈미 총리는 입만 열면 우정산업 민영화 문제만을 들먹이며, 국민들과 우정국간 대립각 세우게 만들기에 몰두했다.

"왜 우정국은 민영화하면 안 되는가?" "무엇 때문에 27만 우정국 직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합니까?" "민주당이 우정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우정국 노조가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기 때문이다"

고이즈미의 이와 같은 전략은 상당히 주효했다. 일본 국민들은 우정국 공무원들 이지메 시키기에 기꺼이 동참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민당 1당 체제의 강화

자민당 단독 절대 안정 의석 확보라는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자민당 압승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고 해도 역시 민주당이다. 권투시합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챔피언처럼 싸우는 도전자를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말로만 정권교체를 해야만 한다고 떠들어 댈뿐 유권자들에게 왜 민주당이 정권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슈 선점은 전부 자민당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매스컴의 역할 역시도 컸다. 대다수 거대 매스컴은 자민당의 2중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고이즈미 총리 가두 연설 현장 화면은 항상 엄청난 인파가 붐비고 박수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뜨거운 열기가 저절로 느껴진다.

반면 오카다 민주당 대표는 클로즈업된다. 열변을 토해내는 주체만 있을 뿐이지 들어주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화면만 봐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또한 이들 거대 매스컴들이 양산해 낸 여론조사 결과 역시 문제가 많다고 몇몇 언론이 이의를 제기했던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의 부재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앞서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구호는 자민당이, 정책은 민주당이 우세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검증해서 알려주고 국민과 국민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파이프라인으로써의 시민단체가 부재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귀로 들리고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성 이벤트에 솔깃해서 소중한 주권을 소중하게 행사하지 못했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사실 이번 선거의 공약만을 놓고 본다면 자민당보다는 민주당안이 내용적으로 더 충실하다는 쪽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은 기울었다. 하지만 역시 국민들은 단순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 책자로 호소한 민주당을 버리고, 단 한 마디로 '개혁'이라고 외친 고이즈미 자민당을 선택했다.

국민들이 선택하고자 했던 것은 개혁이었으나 아쉽게도 그것은 개혁이란 이름의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역시 민중은 단순하고 반복되는 것에 믿음을 준다는 속설을 여실히 증명해서 보여준 선거이기도 했다.

그로 인한 결과다. 늘어나는 세금 부담에 허리깨나 휘청일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사회복지 정책의 축소로 황금 벤치 위를 기웃거리는 배고픈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헌법이 개정되고, 유사법이 발동된 채 은행의 금고 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국민들의 돈이 국가 재정으로 전용되는 그 황당한 경험을 1946년에 이어 또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주변국인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고이즈미와 대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총체적 외교 난국 타개를 위해서 부시 따라 하기를 자재하고,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 맘에 걸리는 것은 지나치리 만큼 과하게 나온 자민당의 압승이라는 선거 결과가 자칫 선거전에 만들어진 고이즈미 진영의 향후 시나리오를 '과거 향하여'로 수정시키는 변심 요인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