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8. 12. 22. 19:28

오전에는 일본에서 오신 지인을 만나 차 한 잔을 나눴다. 내년에 일본에서 개최될 3·1평화운동 100주년 행사 소식 및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두 개의 단상이 꼬리를 물듯 지나간다. 
 
하나, 국가 간 공생과 평화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단적으로, 한·일관계의 미래상이 그렇다. 과거 김대중 국민의 정부시절 일본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주창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1998년 10월에 채택한 합의문이니 말이다. 
 
그 당시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고, 공감을 표하기는 했는데 묘한 의문 또한 가시지를 않았다. 묘한 의문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실현 방안이 참 막연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셔틀외교 정례화’, ‘청소년 교류 확대’, ‘대북(한) 공조’ 등이었던 것 같다. 과연 그렇게 하면 한·일관계가 파트너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선언적 의미 이외에 뭐가 있을까? 다소 심경이 복잡했던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아마도 그것을 거스르는 나의 조급증 탓에 더 애가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또한 오부치 총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둘, 2005년쯤에 책 한 권을 번역했다. 좋은 책이라서 한국에도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 외에 딱히 언급할 내용이 없어, 역자 서문도 짤막하게 썼다. ‘한·일시민연대를 부활하자’, ‘한국의 민주주의를 일본에 수출하자’...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같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노무현 돌풍(개미들의 반란)이 거세게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일본생활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당당하고, 떳떳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마도, 그 영향 때문에 다소 자기만족적인 그런 역자 서문을 썼지 싶다. 
 
이후, 퇴행적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정치 상황들 앞에서 나는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시 수구세력들은 득세를 했고, 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15년 지기 지인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생의 지나간 과거 어디쯤엔가 있을 법했던 위 두 가지 역사들이 사실은 종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내 삶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더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지인 분께서 대충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뿌리는 바로 3·1운동에서 찾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국 근대사 역시 3·1운동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3·1운동이 한국 근대민주주의의 씨앗이었다면, 이를 모태로 87년 민주화항쟁이라는 나무가 자랐고, 그 나무 위에 김대중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라는 가지가 나왔으며, 그 가지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시민민주주의의 찬란한 잎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도도한 민주주의의 물줄기를 일본으로 흐르게 하여, 일본인들이 보고 배우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일본인인 나만의 몫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자면 서로의 연대가 다시금 필요하다.” 그런 말씀이셨다. 
 
물론, 나 또한 강하게 공감했다.  
 
“맞습니다. 한·일관계, 아니 동아시아 역사에서 3·1평화운동은 단지 대한의 독립만을 위한 저항(즉, 반일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저항운동 이었습니다. 우리도 3·1독립운동을 3·1평화운동으로 바꿔 불러야 합니다. 일본 국민들이 이 부분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일본사회 내에서 3·1평화운동이 갖는 의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독립 만세'를 ‘동아시아 평화 만세’로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역사왜곡도 과거사에 대한 부정도 없는, 한·일관계가 비로소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까지를 견인해 내는 힘찬 동력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무한 경쟁, 패권 전쟁 중이다. 그 와중에 한반도는 시대에 역행(?)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해 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다. 경쟁과 분열이 아니라 평화와 공생으로 가자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고 끊어진 허리를 잇자고 손을 맞잡고 있다. 그러니 그게 두려운 일본이다. 
 
그래서다. 이쯤에서 우리는 믿음(신뢰)으로 화답해야 한다. 평화체제 한반도가 주변국(일본)에게 위협이 아닌 평화임을, 경쟁과 전쟁이 아닌 화해와 상생의 길임을 적극 알리고 상호 공감해야 한다. 한·일시민연대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시작되고 또한 그로 인해 완성된다고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 가는 일, 새로운 한·일시민연대가 가야만 할 길이다.



▲ 3·1평화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팜플렛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9. 12:30

부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는 것이 언론들의 주된 논지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새로운 화제거리를 갖고 만나는 정상회담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지금까지 고이즈미 총리가 보여온 행적, 일본사회의 우경화 분위기로부터 유추해 보더라도 지금은 절대로 새로운 것이 태동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도 누차에 걸쳐 강조했듯이 평화와 공생의 동북아 건설 즉, '동북아 균형자' 역할이라고 하는 대의에 우리 스스로가 발을 깊숙이 담그고 있음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다. 문제는 내용이다. 몇 시간 동안이나 얼굴을 맞대고 있었고, 어떤 분위기의 회담이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는 아주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무엇을 지적했고, 무엇을 주문했는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생각을 일본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다'며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더 이상 일본측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도 받아드릴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총리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한국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참여정부 들어서 대일외교가 상당히 당당해졌음이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다소 감정적인 대응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불행한 과거사를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우리 국민 감정상 이를 완벽하게 절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도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

만남이 필요한 때는 주저하지 않고 만나고, 해야 될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대일외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과거 국민의 정부와 故오부치 일본 전 총리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한일관계’라는 틀이 전환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새로운·미래지향적'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모호한 접근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감이 있었다. 도대체 '새로운 한일관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한일관계'는 왜 좋은 것이며, 게다가 어떻게 하면 '새로운 한일관계'가 가능하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이해 증진에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접근 방법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고 본다. 이것이 참여정부로 넘어오면서 변화를 보이게 되는데, 지나간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언과 함께 대일외교의 불투명성이 걷히면서 주도권 역시 손에 쥐게 되는 양상으로 변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참여정부가 민주정부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과거사 문제와 대일외교를 분리해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인식의 전환'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본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인한 갈등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외무장관 및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열리고 있음이 그 한 예가 된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대 현안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는 상당히 용기 있는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새로운 한일관계·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참 의미가 희미하게나마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참여정부의 분리대응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우리정부의 열정에 '진정성'을 더해주고, 나아가 일본내 '평화·온건세력'의 입지를 넓혀주게 되어 이들의 자국내 세력 확보에도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두말이 필요 없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께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아닌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이는 비록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상대는 고이즈미 총리지만,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하고 싶으셨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즉,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놓고 1억 2천만 일본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계산으로 사료된다. 맞다. 그렇게 가야 한다. 그렇게 가다 보면 머지않아 일본 국민들 역시 웃음으로 화답해 올 것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20:08

고이즈미 정권 이후, 일본사회의 보수 우경화 현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특히,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보수 우파적 성격을 띈 정치세력이 주도하고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회 지도층과 언론들이 합심해서 만들어 내는 뛰어난 아젠더 세팅력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채 여과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순진한 국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좋은 예 하나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일본헌법 제
9조에 대한 개정 논의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대 여론이 상당히 우세해 보이던 5·6년 전에 비해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의 찬반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일본 언론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한 분인 이토 나리히코
(伊藤成彦) 선생은 필자가 번역 출판한 자신의 저서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행복한 책읽기, 2006년)」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일본 헌법 제9조가 일본 패전 60년이 되는 오늘까지 문자 하나, 단어 하나마저도 바뀌지 않고 지켜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아시아 제민족으로부터의 강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 헌법 제9조의 존폐를 둘러싼 투쟁은 일본 내의 패권세력과 평화 세력간의 투쟁임과 동시에 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아시아 민중들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단지 일본 헌법 속의 한 조항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질렀던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반성임과 동시에, 더 나아가 다시는 그러한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아시아 각국 민중들을 향한 굳건한 약속 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 보수 우익 패권세력들이 획책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 국가화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반대는 저들이 주장하듯 '내정 간섭'이 아니라 우리의 분명한 '권리'인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만 일본에서 유학생활 중이던 어느날, 일본인 지인과 함께 야스쿠니(靖国)신사 내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시설 유슈칸(遊就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전시실의 2층 입구에 있는 영화 상영관에서 상영중이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잊지말자'라는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고, 대동아 전쟁은 서구 세력으로부터 아시아 제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영화 상영관을 나와
30여분에 걸쳐 전시시설을 쭉 둘러본 후의 제 느낌은 야스쿠니신사 내 그곳, 유슈칸은 단순한 부속시설(전쟁박물관)이 아니라 ‘전쟁 미화 박물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합사되어 있는 A급 전범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고 해도 이와 같은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A급 전범들이 그곳에 있건 없건 지금의 야스쿠니는 과거회귀 세력들의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겠지요.


갈등의 시대, 한·일 양국의 양심적이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굳건한 연대와 동맹만이 21세기를 갈등과 분쟁이 없는 평화와 공생의 세기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교과서 문제, 정신대 문제, 영토문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현재진행형이지 않은 것이 없는 지금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이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