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9.12 비겁함을 벗어 던져라
  2. 2011.11.07 통(通)함을 허하시오
2007년~현재/시 사2012. 9. 12. 16:50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오픈 프라이머리도 어느덧 중반을 넘어 이번 주 주말 경기와 서울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대충 어떤 식으로 끝이 날지 짐작이 간다. 물론, 직접 뛰고 있는 후보들이야 실낱같은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라 할 수 있겠으나 이제는 경선 이후의 대선승리와 정권교체를 준비해야 함이 옳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도 당 지도부의 패권주의 운운하며 경선 룰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한다든가, 나아가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빌려 당원과 국민을 협박하는 후보가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누가 봐도 자신에게 유리한 룰로의 변경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명확한 근거 제시를 통한 문제 제기가 옳다고 보나,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담합론' 외에는 특별히 내 놓는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인 관심사로 지난 제주경선부터 부산경선에 이르기까지, 매번 주의 깊게 경선 과정을 지켜보았음을 전제로 일부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단,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은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둠이 순서일 것 같다.

 

특히, 내가 콕 집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후보가 손학규 후보다. 사실 이 글도 그분을 위해 쓴다고 보면 맞다. 무엇보다도 손학규 후보는 비겁하다. 실체가 있는 '지역' 패권주의에는 영합을 하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이념' 패권주의(당사자의 표현이다)에는 분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민주정부 10년의 역사는 김대중 · 노무현 두 분 전직대통령님의 유산이다. 그리고 적어도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려하는 분이라면 민주정부 10년의 공과를 반성하고 계승함이 옳다고 본다.

 

물론, 그 민주정부 10년 동안 생각을 달리하는 집단 속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의무 같은 것은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기는 하겠으나, 본인의 전직이 어떠했던가에 관계없이 현재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라면 이는 당연한 일이라 사료된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서 자격 없음이다.

 

그런데 종종 그분의 발언을 통해 이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손학규 후보의 정체성에 의심이 든다. 국민의 정부 계승론과 참여정부 책임론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민주정부 10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과도 같은 거다. 어떻게 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겠나? 특정 목적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라는 말씀으로 민주정부 10년을 정리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손학규 후보의 이와 같은 분리 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계승하겠다고 하는 국민의 정부 역시 진정으로 계승할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어 그리 말하는 것인지 이쯤에서 한번 확인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혹, 지역주의에 기대어 표나 얻어 볼 심산으로 맘에도 없는 국민의 정부 계승론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불신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 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와 같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분리 대응 전략이 지지표를 헤아려 정치적으로 접근한 무늬만 화해 · 제휴 제스처라 해도, 그것은 전략상 실수였음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왜 다들 눈에 보이며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현상만 믿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실체가 눈에 안 보인다는 이유로 분명히 존재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세력 - 이를 패권주의라 불러도 좋고, 정치적 결사체라 불러도 좋고, 이념적 연대의식으로 이해해도 좋다 - 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떨어져도 한참이나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지역주의라는 실체가 눈에 보이는 패권주의에는 아부하고, 실체가 모호한 즉, 분산되어 있는 세력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시 또는 폄하하려 한다는 것이다.

 

손학규 후보가 그토록 저주해 마지않는 친노 문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만약, 친노(노빠) 세력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박혀 있었더라면 이런 식의 선거 전략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되었다면 아마도 민주정부 10년 계승론을 들고 나와 정책으로 승부하는 경선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공과와 미래를 갖고 정책 대결을 벌이는 경선이 맞는다고 본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가 친노라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친노 지도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인지 경선 초반부터 내내 친노세력과 척을 지는 구도로 일관했다. 글쎄다. 과연 친노(노빠)라는 세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각종 선거시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가늠해볼 만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특정 지역의 싹쓸이로 대표되는 지역주의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총선이나 지방선거의 경우, 승부가 박빙으로 흘러 누구도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 때,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판단을 한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후보 역시 지난 4·27 재보선(분당을)에서 그 수혜자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특히나 대선과 같이 전국적으로 표를 합산해서 계산하는 경우에는 이에 관한 보다 명확한 결과를 지난 2007년 대선이 보여주었다. 나는 당시 정동영후보가 잃은 500만 표를 앞서 거론한 적극적 · 심정적 친노(노빠)의 유효한 표로 계산을 한다. 그 역시 참여정부와의 차별화 전략에 입각해 친노 때리기로 야권 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관한 더 정확한 표 분석은 전문가들의 몫이 될 터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노무현주의 - 친노와 노빠를 비롯한 심정적 지지자 포함 - 역시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치 이념적 성향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유의미한 세력으로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현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비겁하게 눈에 보이는 실체에만 눈이 멀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패권주의에는 아부하고,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거대한 심정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념적 연대에 무지 · 무관심하다면 이는 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자격미달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일 상2011. 11. 7. 19:29

인지상정, 이심전심, 역지사지. 이런 사자성어를 한 글자로 줄이면? 아마도 통할 통(通)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자성어 가운데서도 이렇듯 통함과 관련한 구절이 많음을 볼 때, 예부터 사람간의 통함이 참으로 중요한 요소였던 모양입니다.

 

토요일에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집사람과 함께 밖엘 나갔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홍탁삼합에 꽂혀서 중(中)자리 하나를 시켜 놓고 탁주 한 사발에 제대로 취해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집사람은 홍어는 입에도 대지 못하는지라 그 많은 걸 혼자서 해치우는 뿌듯함도 만끽하면서 말이지요.

 

홍어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하면 남들은 지레짐작으로 제 고향이 전라도 어디쯤으로 생각들을 하시는데요. 홍어하고는 전혀 친하지 않은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뭐, 제가 비록 그쪽 출신은 아니지만 홍어와 故김대중 전대통령님을 좋아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그쪽 분들 못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암튼, 그렇게 한 잔 거나하게 하고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자 마침 '나는 가수다' 호주편을 하고 있더군요. 재방송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운 채, 방송을 보는데 방청석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을 보니 순간 제 일본 생활이 떠오르며 제 눈가에도 이슬 같은 것이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눈물 글썽이는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그런 모습이 이해가 되더군요. 아마, 벅차 오르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웠지 않았나 미뤄 짐작해 봅니다.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는 말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당해보고, 받아봐야 조국의 소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

 

1999년 4월, 제가 일본 땅에 첫발을 디뎠을 때만해도 그곳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곤 프로야구팀 주니치 드레곤즈에서 활약하던 선동렬 선수와 이종범 선수가 다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국하면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IMF 직후이기도 했으니 더 말할 것이 없었던 때였지요.

 

하지만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2002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개최하게 되고, 한국이 선전을 해서 한국인들 기좀 살려 주나 보다 했더니 웬걸,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욘사마라는 대박에 이어 한류 열풍이 줄줄이 사탕으로 엮어져 들어오더군요.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아마, 그날 '나는 가수다' 방청석에서 눈물 글썽이던 분들도 같은 심정 아니었을까요? 저렇게 멋지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가수들이 수두룩한 나라,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저 세계 60억 인구에게 무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빼어난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나라, 그 순간 그들에겐 조국 대한민국이 많이도 자랑스러웠을 겁니다.

 

호주와 한국, 게다가 재방송이라는, 시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른,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가운데서도 통(通)함을 허하니 제게도 그 감동이 그대로 전달되어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감정이입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통함, 그 중요성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는 예 아닌가 싶어 기술해 봤습니다. 하지만 뭐, 비단 이런 예 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사회 역시 이 통함의 부재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오죽하면 방송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낮 간지러운 '나는 꼼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80년대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 잉크 등사기로 마구 찍어내 돌리던 유인물이란 게 있었습니다. 언로가 통제되어 있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의견과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꼼수다'는 21세기형 디지털 유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검열을 피해 지하 골방에서 등사기로 밀어낸 80년대식 유인물이 '아날로그형 유인물'이었다면, 전파라는 방식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디지털형 유인물' 말입니다.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불행한 현실입니다.

 

(通)함을 허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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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